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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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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캔디의 차 박물관 스리랑카 캔디에서 살던 2년 (2005~2007)동안 가장 많이 갔던 관광명소인 것 같습니다. 차가 좋아서 가기도 했지만, 박물관 3층에서 마시는 차는 참 독특했거든요. 게다가 집에서 4km떨어진 곳이라 산책할 겸 해서 걸어다니곤 했었죠. 물론...방문자들은 걸어서 박물관까지 가는 것을 싫어했지만서도...ㅋㅋㅋㅋ 1층에는 차 공정에 관련된 기계들이 2층에는 차 상품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3층은 차를 마실 수 있는 곳이 있어요~ 캣 워크라는데.... 뭐하는 곳인지는 ㅋㅋㅋㅋ 사진에는 없는데, 이곳옆에 차를 마실 수 있는 테이블이 몇 개가 있어요. 에어컨이 없어도 시원한 산바람이 있어 홍차가 더 맛있답니다. 아....그립당~~~~~
스리랑카의 차공장 방문기 저는 스리랑카 제 2의 도시 캔디에서 2년동안 살았습니다. 모두들 부러워하는 좋은 날씨에 깔끔한 도시 그리고 친절한 사람들과 함께했죠. 2년간 캔디지역의 향신료 재배 소농들과 함께 협동조합을 설립해서 가공센터를 만들고 학생들에게는 컴퓨터센터를 만들어 컴퓨터 교육을 했습니다. 저 혼자 그렇게 했냐구요? 아뇨~ 4명이 팀을 이룬 지역개발팀이 함께 한 작업이었죠. 팀원들과 또 스리랑카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한일이 '홍차마시기'였는데요 어쩜 스리랑카에는 'Tea Time'이 있기때문일꺼예요. 영국식민지를 거치면서 영국과 동일하게 차마시는 시간이 있다고 하는데요, 제 경험으로는 열대국에는 대부분 있는 것 같았어요. 너무 더워 쉬지 않고 일을하면 몸이 많이 망가지더라구요. 그래서 스리랑카에 있는 동..
지역에서 친환경농산물 구입이 더 어렵구나~~~ 장수로 내려온 이후 산책코스가 되어버린 농협 파머스마켓!!! 매끼니마다 밥과 국을 끓이고, 새로운 반찬 한가지씩은 만들려고 애를쓰다보니 매일 찬거리를 조금씩 구입하게 됩니다. 또 모유수유중이기때문에 먹는걸 잘 챙겨먹으려고 하는데...생각만큼 쉽지가 않네요. 요즘 제철과일은 딸기인데, 딸기는 워낙 농약과 화학비료를 많이쓴다고 하여 꼭 친환경딸기를 확인하고 사먹는데, 이곳에는 없더군요. 아니 과일 대부분에서 친환경 마크를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그건 야채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저녁을 먹으면서 신랑과 하루의 일과를 나누다가 찬거리를 구매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즘 대파랑 양파가 수확시기인가봐. 다발로 팔더라구. 양파는 3천원, 대파는 4천원. 그래서 사왔어. 그리고 과일은 딱히 먹을것도 없고...그런데 뭔..
이럴때도 있었네~ 이제 정말 1달남았다. 랑이랑 만날날이... 하루하루 배가 나오는거 같고, 빨리 일을 마무리 하고싶은 마음에 10까지 야근하는데... 하루가 다르게 피로를 느끼는 정도가 커진다. 일반 회사 다니는 사람들은 아이낳기 하루 전까지도 일한다고 하는데... 내가 너무 엄살을 부리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래도 나이 35에 초산이니 ...하며 위로하기도 한다. 요즘에는 나의 몸무게에 무지 민감해졌다. 아이가 생기면서 늘어난 몸무게는 비록 10키로 미만이지만, 결혼하고 아이가 생길때까지 10키로가 불어서...결혼전과 후의 모습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 살이 너무 많이찌면 산도가 두터워져서 아이도 나도 힘들다고 하는데...그래도 열심히 걷고있는데도 몸무게는 계속 증가하기만 한다. 조산원에 이런 고민을 이야기했더니,..
여행가고싶다!!! 아주 멀리까지 가보고 싶어.............................. 작은 물통 하나, 먼지낀 카메라, 때묻은 지도 가방안에 넣고서.... 김동률씨의 출발을 들으면...머리속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사실...배낭여행이 늘 즐겁지만은 않았는데... 무거운 가방에 발은 물집잡히도록 걷고 흥정에 흥정을 거듭해야하고...때로는 벌레들과 함께 잠자리를 청해야하고 좋은 레스토랑을 그냥 지나쳐가면서 한족 구석에서 차디찬 빵을 꺼내먹기도 하고... 그런데... 그때...그 배고프고, 힘들었던 시절이 참 행복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냥 티셔츠 한장 입고 찍은 사진인데도 지금보다 좋아보이는 것은... 그때는 지금보다 젊었었기 때문일까? 잘 모르겠지만, 배가 산만큼 나오고, 앉아있는것도, 누워있는것도, ..
Homestay In Kandy 한국국제협력단(KOICA)으로 스리랑카에 파견되면 현지적응훈련을 받은 후 각 기관으로 파견되어 근무를 하게된다. 우리는 10주간의 현지적응훈련을 받았고 그 훈련을 받는동안 스리랑카의 언어, 역사, 문화 등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며 배웠다. 그리고 파견이 되기 이전에 OJT라고 해서 파견기관을 일주일동안 미리 경험해보는 시간이 있는데, 이 기간동안에는 단원들이 각각 다른 민박집에서 살면서 현지기관으로 출근하게 된다. 난 스리랑카의 성실한 공무원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게 되었다. 그분은 우리나라의 9급공무원과 같은 위치였고, 월급은 약 11만원정도 받으신다고 했다. 남편은 없었고, 어머니와 딸 그리고 남동생과 그 동생의 딸이 한 집에서 살고있었다. 해가 뜨면 랑카 사람들은 마당을 쓸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
쌀로별. 사물놀이가 맺어준 인연 필리핀이라는 열대국가에서 농업공부를 했다. 농업에 대한 나의 무지는 농사와 기후의 밀접한 관계를 모르고도 열정만으로 농업을 공부를 할 수 있다는 특별한 체험을 하게 했다. 정말 고생 많았다. ㅠ.ㅠ 이해되지 않는 것 투성이에 한국에 돌아와서도 나의 논문은 우리나라 전문가들에게 적용할 수 없는 것으로 치부되어 버렸다. 때문에 나는 땅 한평없는 내가 한국에서 자리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나에게 기회를 주고싶다는 이유로 떠나게 된 열대국가로의 해외봉사!! 스리랑카에 가게된 이유이다. 2년의 스리랑카 생활을 돌이켜보면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만큼 좋은 환경에서 많은 것을 보고 많이 배웠다. 물론 실수도 많이했다. 그 중 단연코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건 지금의 신랑을 만났다는 것!!!!!..
문득 실론티가, 스리랑카가 그리워진다 차가운 바람이 불때면 맑은 차맛을 간직한 누워러엘리아가 생각나고 진한 끼리때(밀크티)가 먹고싶을때면 후덥지근한 저지대 그리고 내가 일했던 마을이 생각난다. 항상 자신의 밥을 나눠줬던 스님도 채식하며 명상을 즐겨했던 우리집 맘(주인집 아줌마) 늦게까지 재잘재잘 함께 떠들며 즐거워했던 나의 윗집 영국봉사자들도... 2번의 열병으로 병원신세를 질 때 함께 있어줬던 친구들 처음 공연한 사물놀이도 오늘같은 날 해지는 노을과 함께 따뜻한 홍차한잔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