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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사/마을

펌]마을시민 11 - 마을을 계획하는 <마을 컨설턴트>

 

지난날 전북 진안으로 공동귀농을 시도한 적이 있다. 생태마을 컨설팅 회사에서 함께 일하던 직장동료들이 귀농동지로 의기투합했던 것이다.

출판전문가 홍화씨, 체험교사 겨자씨, 생태농장 계획자 나무씨, 회계전문가 불씨, 지역계획가 사과씨, 공학석사 짚씨, 도시공학도 올리브씨, 컴퓨터전문가 피씨, 사업기획전문가 홀씨 등 모두 아홉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마을컨설팅 일을 하는 동안, 일을 제대로 하자면 연구실, 사무실에서 잔머리를 굴릴 게 아니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마을에서 마을주민으로 생활하며 마을사람들과 몸으로 부대껴야 한다는 각성을 한 것이다. 무엇보다 도시보다 부족하고 어려운 농촌에서 젊은 마을일꾼들이 할 일이 많다고 생각했다.

‘생태공동체마을 건설패 풀씨네’라는 이름까지 내걸었다. 마을을 넘어 지역으로, 진안을 넘어 무주와 장수까지 묶어내려는 이른바 ‘무진장 트라이앵글 네트워크‘를 구상했다. 생태학교를 축으로 생태농장, 생태공장이 어우러지는 생태공동체마을의 모델을 실천하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하지만 실험은 실험이지 현실로 호락호락 변환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론가이거나 계획자인 젊은이들의 열정과 노력만으로는, 실천을 위해 갖추어야 할 자원과 에너지가 부족했다. 계획하는 마을은, 돈, 시간, 사람, 기술 등 조건과 환경이 전제되어야 실현 가능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마을컨설팅 업체는 ‘필요악?’

농촌지역개발이나 농업경영을 주제로 연구하고 교육하고 계획을 세우는 농업․농촌 전문 컨설팅업체는 60곳이 넘는다. 대학, 연구소, NGO 등까지 포함하면 100여 곳이 훌쩍 넘어간다. 특히 농촌지역개발 사업 분야에서는 최대 70억원 규모의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이 시행되면서 우후죽순처럼 업체가 난립하기 시작했다.

정부에서는 무분별하게 팽창하는 업계를 관리하기 위해 농업경영컨설팅업체 인증제, 농촌지역개발컨설팅업체 등록제를 실시하고 있다. 부실한 컨설팅 사례와 폐해가 심각하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되었다. 일을 제대로 잘 할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을 갖춘 컨설팅업체를 가려내겠다는 정책목적이다. 그래서 농촌지역개발 사업을 벌여 농업과 농촌을 살리고 지켜보려는 농민들로 하여금 더불어 일할 좋은 업체와 전문가를 잘 고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도는 역시 제도일 뿐, 현실은 또한 엄연한 현실로 남아있다. 본디 농촌지역개발사업의 제도와 지침에는 마땅히 농민이 주체적이고 주도적으로 나서 계획부터 세우고 사업도 꾸려가도록 명확히 규정해놓고 있다. 하지만 평생 농토에만 매달려 농사만 짓고 살던 농민들이 그런 일을 스스로 감당하기는 어렵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부실하고 부도덕한 농촌지역개발컨설팅업체를‘필요악’으로까지 규정한다. 농촌지역개발 사업판에서 이런 위험요소와 엮일지도 모르는 우려는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잘못하면 농촌지역개발사업에 임하는 농민들이 불안하고 불확실한 선택을 하게 된다.

보다 큰 불행은 설사 더불어 일하기 원하는 업체가 있다고 해도 오로지 마을 주민들 뜻대로 업체를 선택하지 못하는 현실에 있다. 더불어 일할 업체를 정하려면 경쟁입찰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을 잘 할 수 있는 업체보다 입찰경쟁에서 이기는 기술과 방법론이 뛰어난 업체들이 일을 맡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심지어 그저 제안서나 보고서를 기계적으로 찍어내 전국의 입찰 판마다 기웃거리는 자격미달, 함량미달, 도덕성 미달의 사이비 컨설팅업체들마저 버젓이 횡행하는 지경이다.

이런 업체들의 한결같은 특징은 주로 홍보, 마케팅, 디자인, 정책, 일반경영 등 그동안 농업이나 농촌이라는 화두와는 전혀 무관한 일을 해오던 비전문적인 업체들이라는 점이다. 농업과 농촌을 그다지 사랑해보지 않은 업체들이다. 어쩌면 농업과 농촌은 컨설팅장사의 대상일 뿐이다.

결국 이런 업체들이 맡아 일했던 마을이나 지역마다 사업 자체가 부진하거나 표류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이런 업체들의 뒤에는 모 정치인이 버티고 있다든지, 모 지자체장이 봐주고 있다는 등의 소문도 따라붙곤 한다.

문제는 이런 업체가 변칙과 반칙을 무기삼아 국가의 예산, 국민의 혈세를 부적절하게 챙기고 있다는 사실에 그치지 않는다. 결국 이런 엉터리 컨설팅업체들의 난립과 횡행이 방치되면 농촌지역개발컨설팅 업계 전체는 물론, 농촌지역개발 사업의 정책목적과 가치, 나아가 농업과 농촌의 터전이 크게 훼손될 것이라는 불안감과 위기감이 관련 업계와 농촌에 팽배해 있다는 사실이다.

 

마을 컨설턴트 직업의 현주소

마을컨설턴트는 마을 주민 대신 지역개발사업 추진을 도와주는 게 임무다.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녹색농촌체험마을조성사업, 농촌체험교육농장 사업 등에 수십 곳의 컨설팅업체, 수백명의 컨설턴트가 참여하고 있다.

한국농어촌공사를 비롯 엔지니어링기술진흥법에 의한 엔지니어링 활동주체, 농업경영컨설팅업체, 정보기술업체, 대학, 연구소 등 컨설팅 추진기관의 형태는 다양하다. 농어촌공사의 경우 인력과 전문성이 부족해 업체에 용역을 재위탁하는 경우도 있다.

컨설팅의 업무 범위는 사업시작 전 계획수립부터 사업수행 단계에서 주민교육, 마케팅, 홍보 등 소프트웨어사업 전반에 걸친다.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녹색농촌체험마을조성사업, 향토산업육성사업 등은 계획수립부터 소프트웨어사업 전반에 걸쳐 종합컨설팅을 실시한다. 농업․농촌테마공원사업, 전원마을조성사업은 엔지니어링업체가 사업의 기본계획과 시행계획을 수립한다.

컨설팅 경비는 사업마다 다르지만, 통상 총사업비의 10% 안팎이 용역수행의 대가로 컨설팅 수행업체에 지급된다.

업계에는 조경과 건축, 홍보와 마케팅을 전문영역으로 하는 업체가 과반수를 점유한다. 대부분 보유인력 10명 이하, 업력 5년 이하의 중소․영세업체다. 농촌과 지역 일을 한다면서 서울과 경기도에 본사 소재지가 몰려있기도 하다.

업계 전체로 보나, 업계 내부로 보나, 고쳐야 할 점이 적지 않다. 우선 농촌지역개발사업이 급속히 늘어나는 데 비해 컨설팅 공급자는 양적으로, 질적으로 부족하다. 컨설팅업계의 용량과 역량이 정책과 시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통상 상근직원 6명 기준으로 1개 업체가 마을이나 권역을 2곳 정도 맡는 게 적정하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이런저런 개발사업을 벌이는 마을 수가 컨설팅업체 수보다 10배 이상 많은 형편이다.

게다가 지역개발사업의 영역은 광범위하고 난이도와 기대수준도 높지만 분야별 전문업체나 전문인력이 태부족하다. 종합적이고 깊이 있는 고급컨설팅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분야별 컨설턴트 분포를 살펴봐도 홍보․마케팅 분야가 40%로 가장 많다. 다음은 조경, 건축 20%, 관광 20%, 농촌계획 10% 수준이다. 농촌지역개발 일을 시작할 때, 어떤 분야보다 선행되어야 하고 할 일도 많은 교육 등 인적역량강화 분야 전문인력은 3%도 채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심지어 정보기술, 디자인 전문인력 들까지 교육, 마케팅, 마을경영, 마을발전계획 수립 등 종합적이고 전문적인 컨설팅 업무에 동원되는 판국이다.

근본적으로 최선의 전문가를 선택해야할 지역주민, 지자체들은 컨설팅업체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최선의 선택을 하는 데 애로가 있다.

그래서 일부 지명도와 업력을 갖춘 선발업체, 입찰경쟁력이 뛰어난 대형업체, 지역연고성을 내세운 지역업체 등이 마을컨설팅을 독점하는 현상도 두드러진다. 마을마다, 지역마다 차별화된 컨설팅이 어렵고, 업체의 도덕적 해이마저 야기될 수 있는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시장구조인 것이다.

 

마을컨설턴트가 하는 일거리

마을컨설턴트가 해야할 일은 다종다양하고 종합적이다. 사업계획 수립과 운영은 가장 기본적인 업무다.

농촌정책․ 농촌경제․ 지역개발 관련, 지역활성화 방안․ 지역자원발굴․ 공간과 토지이용 계획 등 지역계획 관련, 도농교류․체험프로그램 개발과 운영․이벤트․지역축제 등 농촌관광 관련, 농촌사회․노인과 부녀자 복지․관련 프로그램 개발과 운영 등 사회복지 관련, 사전환경성 검토․환경과 생태보전․수질․대기 등 환경생태 관련, 건축설계․주거공간․리모델링․생태건축 등 건축 관련, 산림․생태경관․조경․마을경관 등 경관 관련, 하천과 도로 정비․SOC시설 계획 등 토목 관련 컨설팅이다.

마케팅․홍보 분야는, 마을홍보와 차별화 기법․홍보물 제작․광고 등 홍보마케팅 관련, 브랜드개발․CI․캐릭터 개발․디자인․상표등록 등 브랜드개발 관련 컨설팅을 수행한다.

정보화 분야는, 홈페이지 개발과 운영․컨텐츠 개발․전자상거래(쇼핑몰) 구축 등, 주민 정보화교육 등, 농업경영컨설팅 분야는 경영전략․마케팅 등 농업경영 관련, 친환경농업․대체작물 개발․농산물 생산 등 농업생산 관련, 농산물 가공․포장․디자인 등, 판로 개척․농산물 가격과 유통 등이 주업무다.

교육과 마을운영 분야는, 변화와 혁신관리․조직 운영 등 리더쉽 전반, 마을가꾸기․농촌관광 등 지역개발 관련 주제별 전문교육, 협의회 구성․주민조직화․의사결정․갈등관리․마을규약 등 마을운영 관련 컨설팅을 주로 한다.

마을컨설팅 방식의 대안

정부에서도 농촌지역개발컨설팅업체 등록제를 시행하면서 업계의 문제를 해결하러 나섰다. 우선 분야별 전문 컨설팅업체 정보 풀(Pool)을 구축했다. 아울러 지역개발사업별 시행지침에 컨설팅업체 선정기준을 제시했다.

해당 정보를 농촌마을에 제공해 마을사업의 주체인 마을주민들로 하여금 업체의 선택폭을 확대하고 최적의 업체와 인연을 맺을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컨설턴트의 전문성을 높이는 게 급선무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아카데미 운영, 자격제도 적용 등을 추진 중이다.

단계별로 고육과정을 이수토록 하고 자격시험을 실시해 자격증을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자격등급도 매길 예정이다. 가령 어시스턴트(Assistant), 제너랄(General), 어드바이스(Advive), 엑스퍼트 (Expert)로 수준별로 대우를 차등화하려는 것이다. 최고 수준의 컨설턴트는 컨설턴트 교육강사, 멘토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컨설팅은 무엇보다 사후관리가 중요하다. 관리감독기관에 의한 행정적 조치도 필요하지만 컨설팅 종료 후에도 컨설팅업체를 마을후견인으로 활동하도록 의무화, 제도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농업인재개발원에서 시행한 귀농․귀촌컨설팅 지원사업의 성과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공급자인 컨설턴트는 수요자인 귀농인이 지정한다. 마을이나 지역 단위가 아니라 개별 귀농․귀촌인과 개별 컨설턴트를 직접 연결해주는 방식이다. 1:1 맨투맨 방식, 원포인트 컨설팅 방식으로 진행된다.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지원기관이나 공무원의 간섭, 부실한 컨설팅업체의 개입이 거의 없다. 전적으로 수요자가 지정한 공급자인 개별 컨설턴트의 실력과 진정성에 성과가 달려있는 것이다.

구체적인 컨설팅 범위는 농업․농촌비즈니스 사업계획을 수립해주는 창업전략 수립 분야, 귀농․귀촌 생활과 문화, 영농기술에 대해 자문하는 영농전략 수입 분야로 나뉜다.

농업․농촌 비즈니스 창업계획 분야의 주제는 보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이다. 펜션, 관광농원, 교육농장, 체험농장, 농업테마파크, 1인 식품기업, 소규모 식품기업, 쇼핑몰, 농어촌휴양관광 창업, 전통식품, 주말농장, 레포츠 시설 등, 농촌 비즈니스 경영체 창업, 농촌 커뮤니티 비즈니스 창업, 농업농촌 네트워크 사업 창업, 농림수산물 가공 비즈니스 창업 등을 폭넓게 다룬다.

컨설턴트와 귀농․귀촌인 사이에 보다 긴밀하고 창조적인 컨설팅이 가능하다. 개인 대 개인의 인연으로 맺어지기 때문에, 사후에도 어떻게든 후속서비스가 이어질 가능성이 많다.

마을컨설턴트는 마을도우미

사실 농촌지역개발 사업, 또는‘마을 만들기’ 일은 사업주체도, 컨설턴트도 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농업과 농촌을 구할 수 있는 해법에 접근해보려는 당찬 노력은 늘 힘에 부친다. 그 속성 자체가 신이 아닌 한낱 사람으로서 그야말로 만족스럽게 잘 해내기 어려운 고난이도의 일거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근본적으로 부단한 학습과 연구를 통해 농업과 농촌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지식과 이해를 갖추어야 하는 이유다. 그 전에 농업과 농촌, 무엇보다 농민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없으면 능히 해내기 어렵다.

컨설턴트들은 주로 생태, 환경, 조경, 관광, 건축, 도시계획, 농학, 농경제학 등을 학교에서 공부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학교에서 배운 걸 현장에서 그대로 써먹기는 역시 쉽지 않다.

무엇보다 대개 마을을 개발하는 방법이나 기술을 잘 모르는 마을주민들과 협력하고 협업하는 일부터가 간단하지 않다. 인사나 소통 부터가 쉽지 않다. 주로 객체인 정부나, 마을을 계획하고 개발하는 업자들이 주도하고 시혜하는 하향식·일방적 역학구도라는 비판이 자꾸 커지게 된다.

특정한 능력과 제한된 경험만을 가진 일천한 업력의 컨설팅업자들이 천편일률적 사업계획과 보고서를 속전속결로 찍어내는 경우도 다반사다. 구조적으로 주객이 뒤바뀔 수밖에 없고, 혁신적 성과물이 창조될 수 없는 사업판이 어쩌면 농촌지역개발컨설팅 업계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획일적 하드웨어와, 그 속에서 돌아가는 작위적인 소프트웨어 때문에 전국적으로 식상하고 을씨년스러운 마을이 계속 양산되는 책임의 상당부분은 컨설턴트의 몫이다.

해법은 결국 마을에서, 마을사람에게서 찾아야 한다. 농촌지역개발, 또는‘마을 만들기’는 정부의 지원, 마을 컨설턴트의 손발, 마을 지도자의 노력에 기대서는 안 된다. 모든 마을 주민의 참여와 자치만이 성공의 열쇠를 가져다 준다.

마을은 정부나 컨설턴트가 만들고 가꿔주는 것이 아니다. 마을컨설턴트는 마을과 사업의 주체인 마을사람들을 거드는 도우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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