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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나라살이/필리핀이야기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 "타워빌 CAMP Asia"

사단법인 캠프가 있는 타워빌에 도착했다. 20년 만에 이철용목사님을 만났다. 머리가 희끗해 진 것을 빼고는 내 눈에 목사님은 똑같았다. 이곳 타워빌을 찾는 한국 손님들이 참 많아 보였다. 목사님도 좀 피곤해 보였다. 도착하자마다 우리는 타워빌 내 캠프에서 진행되고 있는 3개의 사회적 기업을 만났다.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봉제작업장, 주민들에게 보급하고 있는 숯 화덕 작업장. 그리고 공간은 보지 못했지만, 맛있는 빵을 만드는 베이커리까지. 아직은 한국 사람들의 손길이 있지만, 다른 국제협력기관과는 다르게 현지인들 중심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캠프에서는 참 많은 회의를 하는 것을 보았다. 예전 활동가로 있을 때 역동적인 마을의 활동가들이 이구동성으로 했던 말들이 생각났다. “활기 있는 마을 만드는데 가장 많이 드는 건 커피 값. 자주 만나 이야기를 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이곳 캠프에 있는 동안 참 인상적이었던 것은 건물이었다. 다른 곳과 달리 건물을 지을 때 건물 안으로 최대한 빛과 바람을 불러들이기 위해 상당히 노력한 모습이 느껴졌다. 아침, 점심, 저녁 아무 때나 들어와도 건물 안은 상당히 쾌적했다. 내 경험상 동남아시아에서 경험한 최고의 건물이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4박 5일 지내며 이곳에 필요하고 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곳으로 6개월간 파견 나온 대안학교 출신 꿈꾸는 봉사단(이하 꿈봉) 8명의 친구들이 하는 일을 함께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받았다. 첫날 오전에는 꿈봉친구들이 만든 텃밭에서 잘 자라고 있는 토마토의 가지치기와 지지대를 세워주는 작업과 수분조절을 위해 두둑에 말린 풀 멀칭을 해 줬다. 저녁에는 꿈봉친구들과 함께 밭 디자인을 할 때 고려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미리 요청받은 강의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듣고 싶은 게 뭔지 물어봤는데 그 질문이 참 진지했다. 학생들은 내 이야기를 궁금해 했다. 왜 농사를 짓게 되었는지, 그렇게 사는 것이 현실 가능한 것인지 등등. 한 시간이 넘게 이야기를 나누는데도 그들의 눈은 반짝거렸다. 내 이야기를 이렇게 진지하게 잘 들어주는 친구들을 만나니 참 행복했다. 

 

 

 

시간은 참 빨리도 흘러간다. 필리핀에 와서 잠을 잘 못잔 탓인 건지 피곤하면 아파왔던 발바닥의 통증이 심해졌다. 오늘은 이 목사님께서 특별히 부탁하신 음식물 퇴비장을 만들기로 한 날이다. 어제는 식당 아주머니들께 음식물 쓰레기양을 파악하기 위해 전부 모아 달라 부탁드렸다. 그리고 양념이 된 음식물 쓰레기는 양념을 씻어내기 위해 설거지할 때 개수대에 넣어두고 설거지를 해 달라 부탁드렸다. 아주머니들이 어려울 수도 있는 이 부탁을 아무렇지 않게 잘 들어주시는 것으로 봐서 음식물퇴비장을 잘 유지하고 관리하실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를 해 본다.

 

음식물퇴비장은 인표와 내가, 직조를 배우고 있는 혜원과 정현은 봉제작업장에서 캠프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내기로 했다. 음식물퇴비장을 만드는 것이 간단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틀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해 난 특별히 인표에게 부탁을 했다.

 

"인표야 꿈봉 애들이 오면 네가 작업지시 해줄래?"

". . ."

인표는 조금 낯선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야기한다.

"작업지시는 그렇고 제가 애들 오면 물어볼게요."

 

난 인표가 왜 그런 낯선 눈빛을 보낸 건지 궁금했다. 그 답을 찾고 싶어 아이들의 움직임을 지켜봤다. 신기하게도 퇴비장을 함께 만든다고 찾아 온 꿈봉 아이들은 우리가 작업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리고 묻고, 듣고, 움직였다.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그동안 봉석씨가 내게 부탁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도와주고 싶으면 지켜봐봐. 그리고 당신이 할 수 있는 걸 하면 돼. 내가 요청하는 일을 당신이 다 해줄 수는 없잖아."

"내 얘기 좀 잘 들어줘! 당신이 듣고 싶은 거만 듣지 말고. 날 돕고 싶다면서."

아이들을 보며 내가 봉석씨와 가장 힘들었던 부분의 답을 찾은 것 같았다. 내가 뭘 잘못하고 있었는지를. 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그리고 처음으로 이런 친구들과는 함께 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공동체생활에 대한 두려움들이 조금씩 씻어져 가는 것 같았다.

 

음식물퇴비장은 이곳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간단한 도구를 활용해 만들고자 했다. 부실해 보여도 폐목으로 틀을 만들고 벽채로 폐 대나무를 활용하기로 했다.

대나무를 어찌 엮어야할지 고민하다 작업장 관리아저씨께 여쭤보니 재사용이 가능한 대나무를 골라 대나무 엮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긴 대나무를 낫 하나로 능숙하게 작업하시는 모습을 보며 역시 어른들의 지혜와 손기술은 정말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덕분에 어설프지만 음식물퇴비장 만드는 걸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우리를 잘 이끌어 준 인표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하며.

 

 

 

 

내가 이렇게 일하고 있는 사이 한국에 있는 인태는 고열로 힘들어 하고 있다고 한다. 며칠 전 통화하다 “엄마 왜 자꾸 안와요.”하며 내게 따지던 인태가 생각났다. 일 다 끝나고 갈 꺼라 했더니 “아…….정말 왜 그래요!!”하며 전화를 뚝 끊어버리더니. 엄마보고 싶다 우는 대신 아파버린 인태가 맘에 걸려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며, 한국일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몫이니 현재에 집중하라는 봉석씨의 단호한 말에 날 믿고 함께 있는 친구들과 남은 일정에 집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