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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사/시대

누구보다 먼저, 누구보다 편안하게 살기 위해


없다

토요일 오전. 한옥집이 잘 보존되고 있는 북촌의 한 동네인 가회동으로 산책을 갔다. 어제 저녁 시어머니와 신랑이 추억에 잠겨 시어머니의 신혼집이기도 했고 남편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집을 구경 가자고 했기 때문이다. 그 집은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작았지만, 요즘엔 없는 다락방과 마당이 있었고, 골목에서 집으로 가기까지 아주 긴 계단이 있었다고 한다.

안국역에서부터 가회동 그 집으로 가는 동안 남편은 별말이 없다. 내 손을 잡은 그의 손에서는 촉촉한 땀이 배어나고 있다. 그런데, 웬일인지 남편은 계속 길을 따라 올라가기만 하더니, 결국 우리는 삼청동과 성북동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 이르렀다. ‘이상하다’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결국 시댁에 전화를 걸어 예전집 주변에 어느 건물이 있었는지 다시 하나하나 확인하고는 그 위치를 찾아 내려갔다. 오래된 치과 사이에 있는 골목길에 들어선 남편은 또 한참을 둘러보더니 커다란 축대위에 새롭게 지어진 건물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저기인거 같아. 이 골목이 정확한데….우리 집은 없네.” 그는 한 없이 먹먹한 표정으로 커다란 축대 위 덩그러니 서 있는 큰 규모의 게스트하우스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고 있자니 이미 오래전에 없어져버린 우리 집도 생각이 났다.


내 나이 여섯 살

그 집에서 작은 2층집으로 이사를 한 후 내 동생이 태어났으니 내 나이는 정확히 여섯 살이 맞다.

“어머, 아저씨 그 벽을 그렇게 부스면 우리 항아리 다 깨지잖아요! 아저씨가 항아리 값 물어줄 거예요?”

“아줌마! 오늘부터 철거 들어간다고 했잖아요. 안 나가고 이렇게 버티고 있으면 어떻게요?”

“그렇다고 아직 사람이 살고 있는데 이렇게 집을 때려 부수면 어떻게요?”

한참을 엄마와 실랑이 하던 아저씨는 화를 내면서 철거작업을 멈췄던 것 같다. 이 기억 속에 엄마와 아저씨들만 있었던 것으로 보아, 오빠는 학교에 아빠는 직장에 갔던 낮 시간에 우리 집에서 일어났던 일이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는 처절하게 철거하는 아저씨들로부터 우리 집을 지키기 위해 싸웠을 텐데, 내 기억에는 ‘왜 우리 엄마가 저렇게 소리 지르지?’ 라는 기억만 있다. 우리 집이 철거가 된 이유는 그 지역을 그린벨트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때문에 내 아버지는 물론 우리 오빠와 나까지 태어나 자라온 그 집은 철거 통에 깨져버린 항아리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그래도 그 집 앞에는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있었기에 같은 동네에서 세입자가 되기로 한 우리가족은 상도터널위에 우뚝 서 있는 소나무를 바라보면서 “저기에 우리 집이 있었어!”하고 추억하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린벨트도 소나무도 사라지고 아파트단지가 자리하고 있다. 서울 토박이 나와 신랑은 그렇게 태어난 장소를 잃어버렸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몇 년간 외국생활을 하고 돌아와 보니 우리나라는 내 기억과 너무도 달라졌다. 사람들은 살기 좋아졌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난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매캐한 냄새에 머리가 아프고 괴롭기만 했다. 게다가 학교 끝나면 놀았던 뒷동산도 없고, 그 언덕에서 바라보았던 한강도 이젠 아파트가 만든 병풍때문에 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별을 좋아하던 오빠가 가르쳐주었던 별자리는 수많은 조명들로 그 빛을 잃어가고, 친구들과 놀던 골목길에는 쓰레기 냄새와 쌩쌩 달리는 자동차로 무섭기만 하다. 도대체 뭐가 좋아졌다는 거지?


울고 있는 성미산. 참혹한 대한민국

며칠 전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찾았던 성미산 주변에서 우연히 내가 여섯 살 때 보았던 우리엄마처럼 처절히 싸우는 분들과 마주쳤다. 그분들은 철거가 아닌 공사자제를 내려놓는 인부들과 거친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멍하니 그분들을 바라보는 나에게 경비아저씨가 상황설명을 해주셨다.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게 불구경이랑 싸움구경이지? 저렇게 싸우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야. 학교를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저렇게 나무를 잘라내고 산을 없애버리는 건 아니잖아.” 알고 보니, 홍익재단의 ‘명품사립학교’를 위해 마을의 허파와 같은 성미산을 없애고 있는 것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 그 땅값이 싸기 때문이다. 2003년에도 배수지공사로 이미 많은 나무들이 잘려나갔던 성미산에 주민들이 기념일마다 나무를 심어 울창한 숲으로 만들어 2009년 내셔널트러스트에서 ‘꼭 지켜야할 자연문화유산’으로 상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상은 상일뿐인가 보다. 꼭 지켜야할 자연문화유산인 성미산은 잘려나가고 있었다. 동네주민들과 싸우고, 무차별적으로 생명을 죽여 가며 만든 학교에서는 어떤 교육을 시키게 될까?

4대강공사로 집을 잃고 헤메는 검은등 할미새 출처:녹색연합


현재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4대강 현장에서는 더 어처구니없는 일도 일어나고 있다. 사람들이 찾지 않아 우리나라 멸종위기종들이 편안하게 살고 있는 ‘도리섬’등을 생태공원으로 만들어 사람들이 이용하기 좋게 만들겠다고 한다. ‘생태’라고 표방하면서 정작 사람을 제외한 다른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는 공간을 다 파헤쳐버린 것이다. 사람이 이용할 수 있다면, 다른 생명들은 다 죽어도 상관없다는 건가? 이리저리 죽어간 남한강의 동식물들을 보면서 내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생명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 아이가 자라면서 접할 수 있는 생명이 ‘사람’만 있으면 어떡하지?


더 높이, 더 빨리, 빠르게 성장한 대한민국 ‘다이나믹 코리아’

우리나라는 정말 빠르게 변한다. 심지어 그 빠름의 속도 때문에 외신기자들은 우리나라에 1년만 있어도 다른 나라에서 몇 년간 작성할 기사를 쓸 수 있다고 한다. 빠른 성장이 얼마나 좋은지 난 알지 못하겠지만, 한번쯤은 우리 모두가 빠른 개발로 잃어버리는 소중한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또한 마치 레고놀이를 하듯 뭔가를 하나 만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부수고 또 새롭게 만드는 방식은 늘 ‘새로운’ 것만 찾아가는 우리시대의 또 다른 마약이 아닐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 사)한국알트루사, 마음이 건강한 여성이 만드는 착한 사회, 여성상담소, 재미있는학교, 큰언니운동, 도서출판 니, 책으로 만나는 심리상담 계간<니> "중독"편에 실리게 될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