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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나라살이/필리핀이야기

폭풍전야

필리핀 농업유학시리즈 2

폭풍전야

한국을 떠난 지 6일이 지났다.

오늘은 드디어 학교로 간다. 농장에서부터 승용차로 4시간을 계속 달려야만 한다고 한다. 오늘부터 당분간 콩밭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에 아침부터 기운차다.

필리핀 루손중앙주립대학(Central Luzon State University)안에 있는 도로.

농장의 목사님과 사모님이 학교까지 동행하시기로 했다. 목사님의 훌륭한 운전솜씨로 주행 4시간 안에 식사해결까지 했다. 입학하기로 한 학교는 필리핀 루손 섬 중앙부 Nueva Encija 라는 지역에 위치한 루손중앙주립대학(Central Luzon State University)이다. 학교가 꽤 넓다. 입구에서부터 대학원 강의동을 찾는데 꽤 헤맸다. 그러나 대학원 안에서 만난 대학원장은 왠지 익숙한 느낌에 편안함을 주었다.

대학원장과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내 입학원서가 대학원에 도착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황당할 수가!’ 나의 황당함을 눈치 챘는지, 그는 전화기를 마구 눌러댔다. 조금 후 한 아주머니가 성급하게 서류봉투를 들고 들어오신다. ‘허걱~’ 내가 지난 3월에 보냈던 서류가 3개월이나 입학과 외국인 담당관의 서랍에 콕 처박혀 있었던 것이다. ‘어쩐지 연락이 늦더라니~’ 대학원장이 내심 내게 미안한 표정을 보내본다. 난 썩소(썩은 미소)를 감추고 살짝 눈웃음을 보낸다. 외국인이라서 입학 전에 영어시험을 봐야하는 데 담당교수님이 오늘 자리를 비우셨다고 한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 말만 전하는 대학원장이 얄미워서 불평을 늘어놓았다.

“아니 농업으로 역사와 규모가 있는 학교라고 해서 멀리 한국에서부터 찾아왔는데, 입학서류도 엉뚱한 곳에 가있고 입학시즌인데 영어시험 담당교수가 자리에 없다는 게 말이 되나요? 지금 자동차로 4시간을 쭉 달려서 왔는데,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가 오라고 하는 것은 너무하잖아요. 오빠도(목사님) 일을 해서 바쁜데 여기까지 다시 오기는 힘들 것 같아요.”

말이 끝나고 순간 움찔했다. 목사님도 나도 같은 ‘김’씨이기에 대학원장에게 목사님을 오빠라고 서슴없이 거짓말 했다. 이 머나 먼 타국 땅에서 일가친척 한명 없다고 하면, 왠지 불이익을 당하게 될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이야기를 들은 대학원장이 반갑게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아~ 이정도 영어실력이면, 특별히 시험을 치루지 않아도 문제없을 것 같네요. 수속을 시작합시다. 지금 내가 전화로 다 기숙사에 전화연락을 할 테니 그곳으로 가보세요. 오늘부터 그곳에서 지내요.”

‘휴~’

기숙사의 내 자리. 침대, 책생과 의자 그리고 옷장 하나가 한평 남짓한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기숙사에 갔다. 그런데 기숙사 사감이 어디 갔는지 없다. 한 참 후에 나타난 사감은 내가 학교 등록증이 없다고 기숙사 입실이 안 된다고 한다. 이번에는 목사님이 사감과 한참을 실랑이를 벌여 여학생 기숙사 8호에 방을 배정받았다. 대학원 기숙사는 총 4개 동으로 여학생이 1개동 남학생 2개동 그리고 가족이 사용하는 가족형기숙사가 있었다. 한 동에는 10개의 방으로 4명이서 일인당 약 한 평의 공간을 사용하고, 부엌과 화장실과 샤워 실을 공동으로 사용하게 된다. 8호실은 태국 아줌마 2명, 필리핀 학생 한명이 먼저 있었다. 방의 자리는 먼저 온 사람이 햇볕이 드는 넓은 자리를 사용하고 나처럼 늦게 들어온 사람은 부엌과 연결되는 문이 있는 자리를 사용한다. 목사님과 사모님은 방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확인하시면서 나를 부탁하고 학교에서만 살 수 있다는 물소우유를 대량구입하시고 농장으로 떠나셨다. 혼자 남은 나는 작고 까만 세 사람과 눈인사를 나눴다. 첫 만남인데도 불구하고, 따뜻한 웃음을 지으며, 방사용에 대해 설명해 준다. 게다가 냉장고를 비롯하여 부엌용품을 따로 구입하지 말고 자신들 것을 함께 사용하라고 한다. 이 방은 음식도일주일 단위로 돈을 걷어 함께 요리해 먹는 다고 동참하라고 한다. 참 선량해 보이고 친절해 보인다.

다만, 이때까지는 사람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