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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사/녹색연합

[시민운동 2.0] 사막에 씨를 뿌리는 마음

지난 2000년 여름 잠시 방문했던 몽골에서 사막화현상에 환경과 식량위기를 느꼈다. 그리고 넘치는 혈기와 함께 사막에 농사를 짓는 꿈을 꾸며 필리핀으로 떠났다. 주말에는 화산재로 뒤덮였던 농장에서 자원 활동을 하고, 주중에는 학교를 다녔다.

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와 농사짓기를 꿈꿨으나, 이루지 못했다. 결국 다시 열대농업국으로 돌아가 향신료 농부들과 함께 지역사회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작년에서야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정착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혼자 외국생활을 하면서 쌓인 그리움 때문인지 당분간은 한국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고 싶었다. 집안 대대로 서울에서 살았기에 이곳에서 일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녹색연합의 활동가 모집공고를 보고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이곳은 조직체계가 잡혀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결정구조가 수평적이고 일하는 사람들의 지향점이 같기에 이곳에서 일하는 것은 참 행운이라 생각했다.

출근하고 일주일이 지났을까? 활동가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가 않다. 분명 옆에 있었는데 어느새 사라지고, 하루 8시간 근무라고 했는데 시간이 되도 사람들이 퇴근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허걱! 실수했다’ 싶다.

한동안 연장근무를 하면서 개인생활이 보장되지 않아 이 일을 계속 해야 하는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들었다. 게다가 거의 6년간 느리게 살기위해 생활습관을 철저히 바꾸어놓았기에 다시 바쁘게 살아가는 삶에 대한 거부반응이 심각하게 찾아왔다. 그러나 활동가들의 열정과 우리가 하고 있는 활동들이 전문가의 지식과 시민들의 고민을 잘 풀어낼 수 있는 중요한 중간자의 역할이라는 정당성에 다른 생각은 잠시 접기로 했다.

하나를 접었는데 다른 고민이 또 찾아왔다. 경부운하반대와 미국산 쇠고기문제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지난 여름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모님과 심한 갈등을 겪었다. 내 삶의 든든한 기둥이었던 부모님과의 마찰은 고통스러웠다.

이때 지친 나의 몸과 마음에 그늘이 되어주고 싶다는 한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 미래를 계획하게 되었다. 새롭고 즐거우면서도 이제 나와 내 가족 이외에 또 다른 큰 영향권이 형성된 것에 대한 부담감도 컸다. 특히 결혼준비를 하면서 내 부모님 뿐 아니라 함께할 사람과 그 사람의 부모님께 나의 소신을 말씀드리고 조정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졌다.

예를 들어, 우리는 보석채취현장에서 보았던 인권유린과 환경파괴로 더 이상 보석구매는 하지 않기로 결심을 했다. 그래서 결혼예물이야기를 꺼내시는 부모님께 우리의 마음을 전달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부모님 생각은 여전히 목걸이, 귀고리 등으로 장식하는 나를 보고 앞뒤가 잘 안 맞는다고 하셨다. 여전히 보석이 좋아 기존의 것들을 계속 이용하는 나에게 ‘네가 스스로 구매만 하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니냐?’하며 부모님이 나를 대신해서 구매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큰 바위가 내 머리를 내리치는 것 같았다. 비로소 나는 마음으로 정한 것을 현실로 실행하여 결단한 모습을 보여줘야 된다는 것을 알았다. 즉시 나는 그동안 모아두었던 모든 보석을 정리했다.

뿐만 아니라 내 생활양식도 바꾸어 가고 있다. 가방에 시장바구니와 손수건을 넣어두고, 여행 시 물컵은 필수품이 되었다. 화장을 줄였다. 도농교류 조합원이 됐다. 도시에서 사는 동안은 차량구매를 안하기로 했다. 조금씩 천천히 주장하는 것을 실행하는 나를 보는 주변 분들의 마음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민은 끝을 보이지 않는다. 잘 자란 성인 남녀가 만나 함께 살 집 한 칸 얻을 자금을 부모의 도움 없이 마련하기가 만만치가 않다. 시민의 후원으로 활동비를 받아 생활하는 나의 경우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 지출해도 돈을 모으기 힘들어 숨이 막힐 것만 같다. 이런 고민을 지인에게 풀어놓으면 꼭 다른 일자리를 권유하니 함부로 털어놓기도 부담스럽다. 지금도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지난 5월 다시 찾았던 몽골의 수도권지역에서 만났던 분들을 마음에 담고 돌아왔다. 이분들은 1~2 미터의 나무를 키우기 위해 씨뿌리기부터 꾸준히 10년을 보냈다. 어쩌면 열악한 환경에서 더디게 자라는 나무들을 지켜봐야만 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자란 나무들이 이제는 모진 바람과 가뭄에도 견뎌내는 튼튼한 나무가 되었다. 그리고 그분들은 지금도 전과 마찬가지로 매일매일 나무를 심으시고 가꾸고 계신다.

시민환경단체의 활동가로 살아가는 것은 사막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수의 사람들에게 소수의 목소리를 전달해야하고, 부당한 정부정책과도 맞서야 한다. 또한 그런 중간자 역할을 하면서도 개인생활고 맞물려 풀어지지 않는 문제들을 계속해서 풀어나가야만 한다. 비록 이러한 삶이 여전히 힘에 겨워 지치기도 하나, 모진 환경을 겪어냈던 나무와 그 나무를 잘 돌봤던 사람들처럼 꾸준히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걸어간다. 오늘도 환경에 굴하지 않고, 다시 씨뿌리고, 돌보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맡은 역할에 충실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