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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나라살이/스리랑카이야기

쌀로별. 사물놀이가 맺어준 인연

필리핀이라는 열대국가에서 농업공부를 했다.
농업에 대한 나의 무지는 농사와 기후의 밀접한 관계를 모르고도 열정만으로 농업을 공부를 할 수 있다는 특별한 체험을 하게 했다. 정말 고생 많았다. ㅠ.ㅠ 이해되지 않는 것 투성이에 한국에 돌아와서도 나의 논문은 우리나라 전문가들에게 적용할 수 없는 것으로 치부되어 버렸다. 때문에 나는 땅 한평없는 내가 한국에서 자리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나에게 기회를 주고싶다는 이유로 떠나게 된 열대국가로의 해외봉사!! 스리랑카에 가게된 이유이다.

2년의 스리랑카 생활을 돌이켜보면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만큼 좋은 환경에서 많은 것을 보고 많이 배웠다. 물론 실수도 많이했다. 그 중 단연코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건 지금의 신랑을 만났다는 것!!!!!!!!!!!!!!!!!! *^^*

그와 처음 만난것은 우연?이었다. 나는 스리랑카에 지역개발을 위한 "팀제"로 파견되었다. 농촌지역개발이 한 팀이었고 다른팀은 교육중심지역개발이었다. 파견된 우리는 10주동안 현지에서 훈련을 받았는데, 우리가 훈련을 받는 동안 한국의 전통문화를 전하기 위해 국악공연단이 스리랑카에 방문했었고, 그 공연단이 한국인을 위해 하는 공연에서 KOICA 단원중 사물놀이팀이 오프닝을 하게 되었다. 당시 사물놀이팀은 1명이 부족했었고 훈련을 받고있던 우리들에게 1인이 공연을 함께 준비할 것을 요청했었다. 사실 우리팀제가 스리랑카로 파견된 것이 거의 일년만이었기 때문에 선배들도 사물놀이팀에서는 후배를 영입?하고자 하는 마음도 컸던 것 같다. (내 기억으로는 그런데 당시 선배였던 신랑의 기억은 어떤지 모르겠다.) 원래 나와 함께왔던 봉사단원 중 사물놀이를 배운 친구가 있었기에 선배들은 그 친구가 팀에 들어오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친구를 비롯한 다른 단원들은 별 관심이 없었고, 난 관심이 철철넘쳤기에...^^;;;; 내가 그 공연에 동참하기로 했다.

장구가락 소리를 잘 들어가며 북장단을 맞췄다. 힘으로 북을치면서 팔둑이 어찌나 아팠던지...ㅠ.ㅠ

그래도 진지했다. 햇빝때문에 눈을 뜰 수 없었던 그곳에서 선글라스는 나의 필수품이었다.

진지한 우리신랑. 이때는 말랐었네?

공연장 모습. 우리가 오픈닝을 했다

어둡네~ 국악팀과 함께~



딱 1주일
공연 전 연습시간은 1주일 이었다. 당시 난 스리랑카에 도착한지 막 1달이 지났던 터였기 에 공연연습은 우리가 묵었던 우리나라의 청소년 수련관 같은 곳에서 하기로 했다. 넓은 운동장이 있었기에 소리가 요란한 사물놀이 공연연습에는 참 좋았다. 물론 1주일동안 웃거리장단을 배워서 공연해야 하는 나로서는 상당히 긴장되는 일이기는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힘들었던 만큼 재미있었던 것 같다.

공연은 정신없이 신나게 했고, 배우는데만 열중했던 나는 당시 우리 신랑이랑 그다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다만 사물놀이를 시작하면서 그가 외첬던 "경수~~~"를 통해 참 목소리 크다!!라는 그에대한 이미지만 갖고있었을 뿐~

아!! 쌀로별...
사물놀이팀 이름이었다. 왜 쌀로별이라고 물으니...처음 이름을 지을 때 먹었던 과자가 쌀로별이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