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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나라살이/스리랑카이야기

스리랑카에서 활동할 때 난 기사

여전히 그리운 곳. 스리랑카. 우연히 그곳에서 만났던 기자분의 글을 보고 퍼왔다. 다들 잘 지내고 있으려나???
폭우, 차, 바람 그리고 여유... 신랑과 함께 꼭 다시 가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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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스리랑카를 제 3세계로 분류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아프리카나 방글라데시 같은 절대빈곤인 나라보다는 월등하게 잘 사는 지역이다. 정말 한 때지만 60년대 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였다. 남반구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제 농업생산력에는 큰 문제가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지만 해상무역을 통해서 적정한 수익을 올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술이 발달하면서 배의 성능도 좋아지면서 스리랑카에 머물 이유가 사라졌고, 결정적으로 이 나라의 산업 경쟁력이 두각을 나타낼 여지가 없었던 탓도 있다. 스리랑카의 약점은 너무나 명백하다. 섬나라이고 땅의 면적이 적다 보니 남반부 국가들의 장기인 농업분야에서 뚜렷한 강점을 내보일 여지도 없었던 탓이다. 겨우 실론티 정도가 특산물이라 할 수 있는데, 티는 커피와 유사하게 다국적 기업들의 독점하는 상품에 불과하다.

보통 농민들이 재배하는 주요 작물은 후추 같은 향신료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 같은 작물 역시 생산량이 적고 가공시설이 없어 전량을 헐값에 넘길 수 밖에 없다. 이른바 세계화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것 역시 당연한 이러저러한 이유로 스리랑카 농민들은 절대빈곤의 늪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나라 역시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절대 다수를 차지할 수 밖에 없다.

도시 근로자들의 평균 수입은 월 10만원.
농민들의 월 평균 수입은 월 3~5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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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의 한적한 농촌 풍경. 쌀을 키우는 모습이 우리와 흡사하다. 이 나라는 불교 국가 답게 공동체의 중심이 절이 된다. 절의 가진 땅이 많고 승려를 후원하는 것은 마을 사람들의 의무에 가깝다. 야자수와 하얀색의 이국적 파고다만 없으면 우리나라라고 해도 속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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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 씨와 장정학씨와 함께, 이들이 일하는 마을에 가봤다. 한 마을 주민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타밀족이었던 이들 가족은 캔디에서 약 1시간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 (빠탄빠하)에 살고 있었다. 부부가 장모님을 모시고 사는게 이 곳의 전통인 것 같았다.

아이의 엄마는 쿠웨이트에서 가정부 일을 몇 년간 하고 왔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농촌 생활에 약간의 불만을 보였다. '쿠웨이트에서 일할 때는 한달에 약 20만원을 벌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 곳에서는 정말 돈을 벌 수가 없어요." 실제로 이곳 농부들은 조그만 밭뛔기에서 향신료를 키우거나 염소나 닭을 키워서 부수입을 거두는 것 이외에는 뚜렷한 수익원이 없어 보였다.

생산력이 떨어지고 그나마 생산한 농산물의 가격이 턱없이 낮다는 것이 바로 제3세계 농민들이 당면한 현실이다. 과연 이 문제를 이 농촌을 전공한 젊은 지역개발 전문가들은 어떻게 풀어 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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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카의 자금으로 설치된 마을 공동 우물 모습. 약간 설정샷이다. 아이가 사진을 거부했다.


새마을 운동의 기본 원리는 매우 간단하다. 첫째 농촌의 생활기반을 현대화 시켜, 삶의 일정 수준을 확보하고 그 과정을 통해서 수요를 확보해 내고, 그 결과로서 생산력을 증대시킨 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상하수도, 현대식주거시설, 화장실, 반듯한 도로, 그리고 현대적인 농촌조직이다.

우선 이들은 마을 시설에 투자할 곳을 찾았다. 마을에 상수도가 없다는 점을 파악하고 700만원을 들여 우물 5개를 만들었고, 수세식 마을 공동 화장실을 만들었으며, 컴퓨터 교육을 실시하여 마을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시작했다. 물론 그 과정에 마을 사람들의 노동력을 참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 노동력 참여가 없을 경우 지역 개발 사업은 1회성 선심 행사로 전락할 우려가 있기 때문.

조금 놀라운 점은 마을 사람들의 요구 사항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길이 좁고 불편해 포장을 요구했고, 그리고 마을에 불상이 없기 때문에 새 불처님 상을 설치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런 경우가 조금은 황당한 경우인데, 마을 사람들의 요구조건과 지역 개발 전문가들의 요구를 적절하게 조화시키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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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개발 사업의 핵심이 바로 향신료 가공센터였다.

"이 사업의 목표는 바로 농가의 수익을 올리기 위한 첫 단계 입니다. 인근 마을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통해 향신료를 공동으로 수거하여 가공센터에서 건조 및 상품화 단계를 거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 1차 상품일 때보다 월등하게 높은 가격으로 시장에 내놓을 수 있습니다. 꾸준한 생산량을 유지할 수 있고 가공품의 품질을 담보하는게 관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장정학씨)

이 사업에만 사업비의 절대비중인 3000만원이 들었다. 협동조합 조직을 위해 지역정부의 노력과 스님들의 협조를 구해야 했다. 이를 위해 이 두 젊은이들은 스리랑카 어를 배우고 지난 1년 반 동안 이 협종조합 사업에 몰두했다. 이들의 후임은 아마도 마케팅 전문가가 필요할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가공된 상품을 적절한 지역 브랜드를 붙여 시장에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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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향신료 가공 센터의 부지를 내어준 곳은 바로 마을의 중심인 절이었다. 인근에 위치한 스님을 찾아갔다. 아주 푸짐한 인상의 따사로운 스님이었다. 이 절에는 코이카가 지원하는 컴퓨터 교육장이 존재하기도 했다. 아직은 인터넷이 들어오지 않지만 단순한 기능의 컴퓨터 교육을 실시하기에 충분한 성능의 컴퓨터 6대가 설치돼 있었다.

한 여성이 CD음악을 듣기 위해서 교육장에 들렀다. 정말이지 인터넷이 연결되기를 소망해 본다. 그러나 그 유지비를 누가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 제 3세계의 인터넷 문제는 정말이지 세계화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최우선 사업으로 여겨진다. 네그로폰테 교수의 사업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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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적인 브리핑을 듣고 나니 스님이 맛난 점심밥을 준비해 주신다. 마을 사람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호사라고 한다. 스님으로 부터 대접을 받다니. 그런데 놀랍게도 스푼을 주지 않으신다. 말로만 듣던 손으로 먹는 점심?

그랬다. 드디어 진짜 스리랑카에 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손으로 밥을 먹는 다는 것은 내 인생의 최초의 일이었다 이 과정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하게 약술하겠다. 촉감을 이용해 밥을 먹는 것은 참으로 멋진 기억으로 남는다.
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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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는 정말이지 한국인 정서에 쏙 맞는 음식문화다. 특히 손으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현대인들에게 위대한 발견일 수 있다.




Posted by hoj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