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태와 함께 말모이 봤다.
우리말 사전이 만들어지는 긴 과정을 영화로 표현하느랴 참 애들 많이 쓰셨다겠 싶다.
지금 내가 우리나라의 국민으로, 또 우리나라언어를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영화는 단순히 말을 모으는 것만 보여주지 않는다. 1942년 당시 학교에서, 또 사회에서 어느 정도로 우리나라말을 사용하기 어려웠는지, 그 상황을 보여준다. 내가 저 사람의 상황이었다면, 난 어땠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하게 했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우리말을 소중히 지켜주신 분들께 다시한 번 감사드린다.
당시 우리나라 상황을 조금 자세히 아이에게 알려주기 위해 설민석님의 동영상을 아이와 함께 보았다.
말모이를 본 후 문득 2007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을 갔을 때 알게 되었던 Youth day가 생각났다. 여행 중 버스를 잘 못내려 도움을 청하고 있었는데, 흑인 학생들을 가득태운 버스가 우리에게 손짓했었다. 우리의 목적지가 가는 길에 있다며 태워 준 것이다.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올라 탄 버스에서 우리는 6월 16일이 Youth day로 기념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 날이 생긴 사건이 벌어졌던 당시 남아공에는 네델란드출신 사람들이 네델란드계아프리카어를 만들어 학교에서 사용하게 했다고 한다. 당연히 아프리카 학생들은 생소한 언어였을텐데, 그 언어를 잘 모른다고 학교에서는 바보소리를 들으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것에 대한 부당함을 말하던 학생들이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그 날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날이 YOUTH DAY.
2주간 남아공을 여행하면서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접할 수 있어 좋았지만, 여전한 불평등에 목이 메인 듯 답답했었다. 남아공은 아프리카의 유럽이라고 이야기한다. 유럽을 가 본적이 없으니 비교할 수는 없지만, 지나치며 봤던 고급진 장소에서 식사를 하거나 즐기는 사람들은 백인들이었고, 노동자들은 흑인들이었다. 하지만, 여행하는 우리들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마다 손을 내밀어 준 분들은 모두 흑인들이었는데...
아이에게 남아공의 Youth day를 이야기 해 주기 위해 인터넷을 찾다가 아래의 영상을 보게되었다. 나중에 좀 더 차근차근 보기 위해 링크를 걸어둔다.
차별이 곳곳에 넘쳐난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작은것들, 좀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 욕구들. 의도한 것이 아니라도 내 욕구가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면 잠시 그 욕구를 멈추고 들여다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이런 부당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여전히 가슴이 무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나는 존 레논의 노래 Imagine처럼 모두가 평화롭게 사는 지구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