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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머컬쳐디자인/들풀이야기

환삼덩굴

 

 

같은 가시풀, 또 나왔네. 지금 잡아주지 않으면 작년 꼴 난다고."

지난해 여름, 풀베기를 잠시 소홀히 한 틈을 타 환삼덩굴이 무성하게 자라 콩 줄기를 칭칭 감아 버렸다. 콩밭이 아니라 아예 가시풀밭이 되었다. 콩을 살려보겠다고 일주일 동안 한여름 태양 볕에서 환삼덩굴을 베는데 콩줄기와 단단히 얽혀 있어 콩줄기까지 베기가 다반사였다.

더구나 제아무리 중무장을 하고 밭에 들어갔어도 가시에 살갗이 긁히는 바람에 '이런 고역이 따로 없구나' 싶어졌다. 가시에 긁힌 자국들은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되어서야 사라지니, 농사꾼이라면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적군 반열에 환삼덩굴을 올려놓는 것도 당연하다.

환삼덩굴은 3월에 자줏빛 긴 떡잎을 올린다. 5월부터 모양을 갖추며 가장자리에서 본밭으로 향할 자세를 하다가, 잡초를 제거하지 않은 6월 말부터 덩굴이 밭으로 들어가 다른 재배식물들을 감기 시작한다.

7~8월에 성장이 가장 왕성해서 만약 이때 풀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키가 작은 식물들은 환삼덩굴에 엉켜 나중에 덩달아 뽑히기 일쑤다. 어린싹부터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싹을 볼 때마다 이 잡듯이 잡았다.

눈코 뜰 새 없이 밭에 씨앗 뿌리고 잠시 숨을 돌리는 6월이 되나 싶었지만 밭은 어느새 환삼덩굴 천지가 되어 있었다. 가시풀의 정확한 이름만 안다면 약효를 알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떼를 지어와 잡초를 제거해줄 텐데⋯⋯. 어느 날 유기축산 양돈교육을 받을 때였다. 돼지들이 잘 먹는 덩굴이라며 강사가 뭔가 보여주는데 그것이 바로 '환삼덩굴'이었다. '어이쿠, 이게 웬 횡재야' 싶었다. 연두농장의 돼지에게 환삼덩굴을 베어다주니 돼지들이 정신없이 먹는다.

토끼도 마찬가지로 '환삼덩굴'에 환장한 듯 먹어치웠다. 닭은 그냥 쪼다가 만다. 환삼덩굴의 쓰임새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연두농장을 운영하면서 나는 농장의 식물과 동물을 관찰하고 경험하는 생태체험교육도 함께 하고 있다. 그래서 어린 학생들에게 환삼덩굴 어린잎을 뜯게 했다. 학생들은 선생인 나를 따라 환삼덩굴 어린잎을 씹어 먹는다.

"맛이 어때요?"
"맛있어요."
"그저 그래요"

10여 명밖에 안되지만 학생들의 대답은 천차만별이다. 어린잎은 쌉쌀하면서 달작 지근하므로 어린이들도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다.

"환삼덩굴 잎사귀로 점심을 해 먹을 거예요. 색이 짙은 건 약간 억세니까, 여린 잎만 쌈으로 먹읍시다."

학생들에게 여러 가지 잡초를 뜯어 맛을 보게 한 뒤, 괜찮다고 생각하는 몇 가지 잡초를 쌈거리로 택했다. 학생들과 함께 온 선생들 또한 신기해하며 호기심으로 잡초 쌈을 먹기 시작했다. 줄기가 억세고 잔가시가 많아서 자칫 방심했다가는 긁히기 일쑤인 환삼덩굴은 번식력이 뛰어난 식물이다. 길가, 둑, 밭 도대체 없는 곳이 없다. 환삼덩굴의 번식력을 보면 토종잡초가 아니다.

번식력이 매우 왕성한 잡초는 대체로 외래종으로 낯선 땅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번식'에 사력을 다한다. 밭의 적군인 환삼덩굴을 한방에서는 '율초' 또는 '한삼'이라고 부른다. 여름철 잎이 무성할 때 베어서 말린다. 뽕나무과 한해살이 덩굴풀로 삼을 닮아 잎은 마주나고 손바닥 모양으로 갈라져 있다. 열매와 잎 그리고 줄기를 약용으로 쓰며 아시아에 분포한다. 말린 잎은 가루로 내어 복용하는데, 그 질긴 생명력만큼 효능도 다양하다.

고혈압 환자에게 하루 3회 식전에 10g 정도를 복용하게 하면 2~3일 뒤에 혈압이 내리기 시작한다. 한 달쯤 지나면 고혈압의 여러 증상, 수면장애, 두통, 머리가 무거운 느낌, 시력장애, 이명, 손발이 저린 것, 심장 부위가 답답한 것, 소변이 잘 안 나오는 것, 언어장애 등이 거의 대부분 없어지고 혈압도 정상에 가깝게 내려간다. 고혈압의 제증상에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피부병에도 좋다.

물을 욕조에 받아놓은 뒤 환삼덩굴을 진하게 달여 넣어 목욕을 해보라. 처음에는 조금 가렵지만 긁지 않고 참으면 잠시 후 가려움증이 사라진다. 처음 이틀 동안은 하루 두 번씩 목욕을 하고, 사흘째엔 한 번씩 목욕을 한다. 환삼덩굴은 현대인의 고질병인 고혈압과 아토피에 특히 좋다. 고혈압을 가진 사십대 후반의 사람들이나 아토피 피부병을 가진 이들은 4월 말부터 나오는 새순과 5~8월까지 연둣빛 잎사귀를 일상의 식재—쌈, 데쳐서 무치기 등—로 사용하고, 7~9월 초까지는 그 잎사귀를 말려서 가루를 냈다가 평상시에 복용하며, 줄기까지 베어 말려 목욕물로 사용한다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치료하거나 예방약으로 사용할 수 있다.

벌레나 뱀에 물렸을 때에도 짓찧어 소주에 약간 섞어서 연고처럼 만들어서 환부에 바른다. 평소에 환삼덩굴을 소주에 담가 놓고 쓰면 여름철 모기에 물렸을 때 그냥 바를 수 있다. 벌레나 뱀한테 심하게 물렸을 때는 하루에 한 번씩 갈아 붙이면 2~4일 만에 상처가 아물고 5~8일 만에 부은 것이 내린다. 설사에는 탕을 만들어 조금씩 먹는다. 환삼덩굴은 삼과에 속한다. 대마도 삼과에 속한다. 한국에서는 '대마'라는 말만 나오면 움찔하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향정신성 마약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들이 떠들어대는 것과 달리 대마는 심각한 약물이 아니다.

의학계에서 남용되는 항생제보다 내성력이 작고, 담배보다도 치명적이지 않다. 예전에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이 고된 농사 도중 잠시 쉬어가기 위해 대마초를 말아 피웠다. 그러던 것이 70년대 담배산업이 육성되면서 대마초가 불법화되었다. 하지만 반드시 대마초 때문만은 아니다. 옷을 만들어 입고 음식으로 사용했으며 목재로도 사용했던 대마재배는 석유산업에 불이 붙으면서 밀리기 시작했다. 석유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대마의 '환금작물'로서의 가치도 덩달아 떨어졌다.

나는 개인적으로 대마재배를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마야말로 식의주를 해결하고 유기적인 '순환의 생활'을 할 수 있는 핵심 역할을 하니까. 앞에서 말했듯이 대마와 같은 삼과인 환삼덩굴도 약성이 뛰어나다. 대마 종자에는 불포화지방산과 필수지방산 오메가3부터 6까지 들어 있어 많은 질병의 예방제로서 쓰인다. 이제부터라도 환삼덩굴의 장점이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우리 농부들이 환삼덩굴로 인해 골머리를 썩지 않도록 말이다. 더러운 하천 가에도 무성한 환삼덩굴. 생명이란 모름지기 제 나름의 목적과 이유를 가지고 태어나는 법이다. 오만불손한 사람은 환삼덩굴을 성가시기 그지없는 존재로 규정하지만, 정작 그들은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데 자신의 몫을 다하고 있다. 환삼덩굴이 어디를 가나 무성하게 자라는 것은 어리석은 인간에 대한 항의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먹자]

• 환삼덩굴 쌈
4월 말부터 나오는 새순을 쌈으로 먹는다. 또는 5~6월에 환삼덩굴 어린잎을 따서 쌈으로 먹는다. 약간 까칠할 수 있지만 깻잎 등과 함께 먹으면 까칠함을 느끼지 못한다. 생잎을 다른 잡초와 함께 비빔밥으로 먹는다.

• 환삼덩굴 절임
6~7월의 잎사귀를 깻잎김치 담그듯 환삼덩굴김치나 절임으로 만들어서 먹으면 좋다. 담그는 방법은 깻잎김치를 만들 때와 같다. 먼저 마늘과 고춧가루, 양조간장, 파, 깨소금 양념장을 만들어 한 잎 한 잎 포개어 절인다. 간장에 살짝 쪄서 먹어도 좋다. 또한 깻잎이나 콩잎처럼 된장에 넣어서 7일 정도 숙성시켜 먹기도 한다. 소금물에 절여서 양념해서 먹어도 좋다.

• 환삼덩굴 데치기
환삼덩굴 잎을 살짝 데친다. 데쳐서 나물로 먹기도 하고, 채소 샤부샤부로 해서 소스에 찍어 먹기도 한다.

• 환삼덩굴 분말
억센 잎을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 말려서 바싹해졌을 때 가루로 낸다. 주스나 우유에 타서 먹거나 밥에 비벼 먹거나 샐러드에 뿌려 먹는다.

• 환삼덩굴 차
잎을 그늘에 말린다. 차로 내어 먹기도 하고 끓여서 음료수처럼 냉장고에 넣고 먹기도 한다. 잎에 묻은 먼지 등을 씻는 의미에서 첫 물은 버리고 두 번째 물을 우려서 먹는다.

[네이버 지식백과] 환삼덩굴 - 모든 존재는 제 나름의 목적과 이유가 있다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약이 되는 잡초음식), 2011.12.16, 도서출판 들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