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바우 작은 도서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김세진 선생님이 녹색평론 105호(2009년 3-4월)에 실린 마을 도서관 이야기를 한 번 보라고 추천해주신 게 계기가 됐다.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사무처장, 안찬수 선생님이 쓰신 글은 옥천에서도 가장 내륙에 있고 인구도 가장 적은 안남면 마을 도서관과 어르신들 문해교실인 '어머니학교'에 대한 이야기였다.
농촌복지포럼 때문에 거창에 있는 동안 인터넷을 검색해서 알게 된 전화번호로 도서관에 연락을 드렸고 다음 날 관장님인 주교종 선생님과 직접 통화를 했다. 일요일은 휴관일이니 월요일쯤 방문하면 좋겠다는 말씀.
(관련기사)
대한민국하고도 작은 면, 여기가 '자치 1번지'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70103143107514&p=hani)
# 3월 30일, 월.
거창을 떠나 대전을 거쳐 옥천으로 갔다. 마침 간 날이 옥천 5일장 하는 날이라 사람들이 북적북적, 읍내는 웅성웅성, 차는 요리조리 피해다니며 운전하기 바쁘다. 그래도 사람들 사이에 대화와 웃음, 여유가 남아있는 북적거림이 느껴진다.
안남 가는 버스에 올라 맨 뒷좌석에 쭉 앉아계시는 어르신들께 안남면 소재지 가는데 어디에 내리면 될지 여쭈었다.
친구분들인 것 같은 어르신 중 한 분이 "나도 거기 내려. 나 내릴 때 따라 내림 돼~" 하신다.
곧 이어 궁금해하시는 표정으로 물으시는 말씀들, "어디 갈라고?" 배바우 도서관 가려고 왔다고 하니 "어~ 거기? 우리는 서당골 가는데"하신다.
친절한 안내를 받고 내린 뒤에도 위치를 알려주셔서 편하게 갔다.
읍에서도 버스가 온 방향으로 2,3분 걸어가면 나오는 배바우 작은 도서관.
도서관 안에 들어서자 지금은 잠깐 쉬고 계시지만, 도서관 사무국장 일을 하셨던 김미희 선생님이 계셨고 간단히 소개를 드리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말씀 중 기억에 남는 것.
"사실 그래요. 시골이고 농촌이라고 지원하는 게 많거든요. 학교에서도 공짜로 활동하고, 도서관에서도 지원하면 되니까 공짜라서 애들이 그게 당연한 줄 알아요. 사실 도서관 같은 경우 넉넉한 게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 써서 공짜로 했는데 할수록 이게 아니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지난 번부터 조금이라도 참가비를 받으려니까 '왜 갑자기 돈 내요?'하는 거죠. 사실 그게 참 어렵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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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릴 적부터 '공짜'가 당연한 것인양 '받고만' 자라는 농촌 아이들.
농촌의 미덕이 적더라도 나누고 베풀며, 서로 보살피는 '인정'에 있었는데
농촌에 젊은 사람이 있고 없고를 떠나 지금처럼 아이들부터 받는 것만 길들여버리면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농촌의 미덕은 어디에 있을까. 감히 "우리 마을은 인정이 좋습니다"할 수 있을까...
'공짜'로 베푸는 시혜와 자선 때문에 멍들어갈 농촌 아이들 인격과 심성을 생각하니 시골사회사업가로서 아이들, 어르신들 만나려는 이로서 광활, 섬활이 그랬던 것처럼 가야할 당위성이 확고해진다.
인사 잘 하고 감사할 줄 알며 적은 것도 이웃, 친구와 나누고 배려할 줄 아는 아이. 자기 고장, 터, 이웃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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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 선생님과 얘기 나누다 보니 주교종 관장님이 오셨다.
마침 그 날 저녁, 친환경 지역급식 회의 때문에 옥천 흙살림 관련 분들과 지역분들 회의가 있으시다며 그 전에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마치 면접처럼 왜 농촌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안남 배바우작은도서관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농촌에서 어떤 일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도서관 활동을 어떻게 해보고 싶은지 등을 물어보셨고 이에 답변을 드렸다.
들으시고서 "우리 생각이랑 많이 비슷하네요."라는 관장님 말씀.
자신은 무리하게 가고 싶지 않고, 지역에서 할 수 있는만큼 하고 싶다는 관장님 말씀.
그저 안남식으로 해보고 싶다며 예전에 치열하게 다투기도 하고 무언가 뺏으려고 한 적도 있지만 지금 생각하는 것은 '대안학교'같은 것보다 할 수 있는 만큼이 중요한 것 같다고 하셨다.
옥천 흙살림 회장 한중열 선생님과 일행이신 분, 어머니학교 교장이신 송윤섭 선생님, 그리고 금강하천감시센터 신한중 대표님이 곧 오셔서 인사를 나누고 간단히 식사를 했다.
그 뒤에 친환경 지역급식회의를 하셨는데 2시간이 훌쩍 넘게 회의를 하시면서 갑론을박하며 자신의 지식을 주장하는 모습보다 차분하게 자기 의견을 보태는, 무게감이 느껴지는 모습이라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다.
아무튼 회의가 끝나고 제게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셨고 아까처럼 말씀드렸다.
안남면은 옥천에서도 가장 내륙 쪽에 위치해있고 인구도 옥천군 면 중에 가장 적은 1,500명 정도며
지형은 약간 분지형으로 산이 둘러싸고 있고 대청호로 인해 피해를 받기도 하는지라 대청호 물이용부담금을 받는 지역이라고 했다.
또한 대청호 바로 옆에 있어 수질 보존대책지역으로 묶여있어 공장 개발이 불가능한 지역이기도 하단다.
어머니학교 송윤섭 선생님은 20년 전 무작정 옥천 안남에 있다는 학교 선배 말만 믿고 안남으로 온 경우라고 하시며
지금은 도덕2리 이장을 하고 있지만 예전에 농민회 활동을 격하게 했었기 때문에 '빨갱이'소리도 많이 들으셨단다.
지금은 안남 어머니학교 덕분에 마을 분들께 그 이미지도 많이 바꾸어내고 신뢰도 많이 얻으셨단다.
(마을 소식지인 '배바우' 중 어머니학교 관련)
마을소식지가 비록 사정으로 인해 잠시 중단중이지만 내용을 보니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안의 마을조사단이 마을의 유래, 역사를 돌아다니면서 생생하게 듣고 정리하며 마을의 작은 소식, 이야기 거리들을 재미나게 담는 이야기를 보며 (http://cafe.daum.net/cswcamp/5Eut/1587) 가슴이 뛰고 설레였는데, 여기 소식지도 그러했다.
마을 사는 사람들의 작은 이야기, 안남 배바우마을이 지향해야 할 가치들, 아이들과 어른들의 마을에 대한 애정이 담긴 기사들...
사회사업가가 마을 소식지 만드는 일로 아이들과 마을로 나가서 동네 분들 두루 만나며 이야기 듣고, 때론 일손 거들거나 맛있는 것 얻어먹고 어떤 때는 마을에 먹거리 나누는 일 주선하며 사회사업하다면 얼마나 가슴뛰는 일이 될까.
그리고 마을소식지 만드는 과정에 아이들에게 걸언하여 함께 하도록 부탁해
마을, 이웃에 대해 관심 갖게 하고 자기 땀이 담긴 소식지를 만들어 내는 경험을 한다면, 얼마나 뿌듯하고 보람찰까.
그리고 그걸 아이들 손을 통해 받는 마을 어르신들은 아이들이 얼마나 대견해보이고 성숙해보일까.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마냥 노는 줄로만 알았던 분들이 지역사회에 관심갖고 마음쓰는 아이들 모습에 얼마나 감동받으실까.
관장님도 내가 만약 여기서 일을 하게 된다면, 소식지 일을 해달라 부탁하셨기에 그 일을 그리며 잠시 마음이 따뜻해졌다.
# 3월 31일, 화요일.
주교종 관장님 댁에서 아침을 함께 하고 면소재지인 연주리 면사무소2층에 있는 어머니학교를 찾았다.
아침 9시반에 시작하는 어머니학교, 송윤섭 선생님이 도착하셨고 면사무소 직원분들께 인사를 드리고서 2층으로 올라갔다.
1~3반으로 되어있는 어머니학교는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들, 면사무소 직원들이 직접 어르신들께 한글을 가르치신다.
점심 때 알게 된 사실인데, 안남에 계신 어르신들은 어머니학교 오면 만나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글을 배워서 써먹는 재미에
차량운행을 따로 하지 않아도 멀리서 일찍이 걸어오신단다.
곡성의 이정일 선생님이 하시는 문해교실, 그리고 옥천 어머니학교를 보며 농촌에서 어르신 사회사업을 하는 좋은 구실로 문해교실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점심 때는 주교종 관장님 소개로 안내면 주민자치센터 일을 하며 버섯농사를 지으시는 송종용 선생님을 따라 안남면 옆에 있는 안내면에 갔다.
안내면은 면사무소 2층에서 어르신들 레크레이션을 하고 있었고, 옆 방에서는 이주여성분들과 한글교실을 하고 있었다.
안남면과 안내면에서 각자 마을의 자립과 공동체성을 위해 애쓰시며 서로 하는 일을 조언해주고 평소에도 좋은 관계를 맺고 지내는 송종용 선생님과 주교종 선생님 모습이 참 좋아보였다.
물론, 한계도 보였다. (밑의 내용은 송종용 선생님과 주교종 선생님이 서로 일에 대해 조언해주는 내용이다)
안내면은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개인의 활동이 지역에서 자리잡고 있는 반면 안남면은 주교종 선생님, 송윤섭 선생님 같이 지역일 하는 사람만 일하는 것처럼 도드라져 보인다는 점이었다.
안남서 마을 도서관 지을 때도 '이런 시골에 도서관을 굳이 지어야 되나...'하는 마을사람들이 있었고 도서관이 지어지고 난 후에도 도서관이 어른들이 흔히 인식하는 '조용한 독서실' 분위기가 아닌 아이들 놀이터 같으니 '이게 무슨 도서관이야... '하는 분들도 계시단다.
당연한 일이다. 복지소학 강좌 때 한덕연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지만 모두가 좋다, 잘 한다 하는 일이 어디있겠으며 오히려 마땅한 뜻, 옳은 길을 갈 때 시샘하거나 시기하는 이들이 있음이 더 당연한 일이지 싶다. 그것이 오히려 더 마땅하게 가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오히려 도서관에 대한 그런 편견과 인식을 극복할 긍정적 대안으로 지역사회에서, 지역사회로써, 지역주민의 삶으로 도서관 활동을 풀어나가야 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마을 도서관이든 지역에 위치한 복지기관이든 활동하는 핵심적인 터는 마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삶터, 일터에서 비롯하자.
또한 현재 안남이 이미 가진 강점으로 보이는 '어머니 학교'를 지역사회에 더 잘 녹여내는 일도 귀하겠다 싶었다.
어머니학교 시간 늦지 않으려고 거동 불편한 어르신들도 손 맞잡고 멀리서부터 시간맞춰 걸어오시는 일, 건강이 안 좋아져 못 나오는 어르신을 서로 안부 전하며 염려하는 모습...
잘 여쭙고 의논하고, 부탁한다면 어머니학교를 구실로도 마을의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어머니학교에서 한글을 배우신 어르신들은 이미 자기 삶터에서 감동적인 생활을 가꾸고 계셨다.
며느리한테 편지를 써서 봉투에 넣어 직접 우체국에 가 부치자 그 편지를 받은 며느리가 읽고 감동해서 전화하고 직접 찾아오는가 하면
어르신이 직접 붓으로 먹을 갈아 서예를 한다고 하자 며느리가 우리집안 가훈을 어머니께 써달라며 부탁하고, 며느리 앞에서 당당하게 한 자 한 자 써내려간 가훈을 집 정문에 붙여놓으신 일...
한글을 배운 것이 단순히 글을 익힘에서 그치지 않고 실생활에 적용, 활용되면서 소농으로서의 인생을 살아온 어르신들의 삶의 지혜와 질박한 아름다움이 글로 묻어나니 참으로 반갑고 감동스러웠다.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손주손녀, 며느리도 할머니를 자랑스레 여기게 되니 가족관계까지 살리는 '사회사업'을 이미 하고 계셨다.
나 또한 더듬어 돌이켜보면 할머니 생전에 받은 편지는 그 글씨체까지 아련하게 기억나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릿한데
농촌 아이들도 자라면서 할머니가 쓴 편지를 받고 할머니가 농사지으시는 이야기를 글로 보고 할머니가 써준 서예 글씨 보며 자라는데, 자라난 후 그 기억이 얼마나 가슴저밀까.
저녁식사는 안남에 사시는 민혜경 어머니(다인이 어머니)께서 대접해주셨다. 그 자리에서 점심 때 잠시 인사만 드렸던 옥천신문, 황민호 기자를 만났다.
철암 어린이 도서관을 이미 알고 계셨고 그래서 철암에서 광활한 이야기 하기가 한결 편안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안남에서 하고픈 일 이야기, 농촌에서 사회사업을 하는 뜻을 말씀드렸고 다음에 찾아올 때 꼭 연락달라며 크게 반가워하셨다.
# 4월 1일, 수요일.
어제처럼 주교종 관장님 댁에서 아침을 먹고 관장님 차를 타고 안남면을 돌았다.
차를 타고 다니며 보이는 안남의 모습은 '소농'일 수 밖에 없는 지리적인 여건이었다.
산이 둘러싸고 있는 분지 지형에 있어 농지가 넓지 않은데다 산 뒤로는 금강이 굽이굽이 흐르고 있고,
수몰지역에는 다른 농작물을 심기 어렵고 잠길 위험도 있기에 비료적 약을 치지 않고 짓는 보리, 옥수수 정도만 심는 편이었다.
또 밭을 갈거나, 비닐멀칭을 하시는 것도 삼삼오오 모여 일 하시는 '소농'의 모습이 자주 보였다.
마을을 둘러보고 관장님 사모님이신 조명숙 선생님이 일하고 계신 토마토 비닐하우스로 갔다.
반팔 입고도 땀흘리실 정도로 전국의 생협매장으로 보낼 토마토를 열심히 수확하고 계신 조명숙 선생님이 반겨주셨다.
조명숙 선생님이 점심을 사주셔서 맛있게 먹고,
동네 아주머니 한 분과 함께 한반도 지형을 닮은 곳이라서 유명해진 옥천군 안남면 연주리 둔주봉에 올랐다.
(사진 출처: http://cafe.daum.net/hbike/WEt/585?docid=1ARxD|WEt|585|20080830201940)
한반도 지형을 좌우로 대칭한 듯한 이 곳을 보며 옥천이 고향인 정지용 시인의 '향수'가 떠올랐다.
둔주봉에서 내려오는 길에 조명숙 선생님과 동네 아주머니 분이 나누는 이야기가 귀에 들어온다.
몇 년전까지 전기세 1만원씩 더 모아 동네 어른들을 모시고 연말되면 읍에 가서 저녁도 대접하고, 원하시면 노래방까지 모시곤 했단다.
두 분이서 '그 일도 다시 해야 할텐데...' 하시며 얘기 나누시는데
그 이야기 듣는 난,
이전에 해오셨던 마을에서 어른을 섬기는 일. 그 일을 주선하고 되살리고 살피는 일이 어르신 사회사업을 마을에서 하려는 사회사업가라면 참 좋은 구실이요, 명분이 되겠다 싶었다.
물론 식사하고 노래방가는 것이 염려된다면 그것 또한 걸언하여 더 좋은 방향을 찾을 수도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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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을 떠나는 오후, 조명숙 선생님께서 옥천역까지 차를 태워다 주셨다.
금강을 휘감고 돌아가는 길이 벚꽃이 피려는 찰나여서 참으로 아름다웠는데
이내 눈에 들어온 금강이 어우러지자 그것 또한 장관이었다.
해가 내려앉기 시작할 시간에 굽이굽이 돌아 흐르는 강 위로 비치는 햇살은 강과 맞닿자 곧 금빛이 되었고
수풀이 우거진 가운데 강의 금빛을 머금은 풀은 바람결에 흔들리며 돌아 흐르는 강을 아늑하게 품고 있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집웅,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 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 정지용, '향수' |
관심사/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