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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소마을

펌] 2006년 하늘소마을 이야기

하늘소마을에서 살기 시작한 지 벌써 3년차.

검색하다가 우연히 예전 하늘소마을 자료를 읽게되었다.

2006년. 사진에 있는 분들은 아직도 하늘소 마을에 살고계신다. 반갑기도하고 내가 살고있는 마을의 옛 이야기가 듣고싶기도 해서 퍼왔다.

 

 

"우리들이 산에서 땀 흘리며 애 쓴 시간과 보람들"

(현장 탐방) 귀농 공동체 “장수 하늘소마을”
오현주 기자
하늘소마을 주민들. 왼쪽부터 장상환, 이진영 허윤행 부부, 김진달, 정미영 김지탁 부부.
www.naturei.net 2006-01-16 [ 오현주 ]

서울 부산 수원 등 대도시의 귀농인들이 시골에 마을을 만들어 살고 있는 귀농공동체 장수 하늘소마을. 벌써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이들 주민들은 어떻게 살아왔을까. 다양한 직업처럼 개성이 각기 다른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살면서 겪은 일들 & 앞으로의 비전을 알아보았다.



“귀농 공동체는 어떨까?”
귀농을 앞둔 이들이 한 번 정도는 짚어보는 문제이다. 공동체에 들어가면 농사 짓는 것을 배울 수 있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지을 수 있고, 시골 텃세 덜 받고, 도로 전기 수도 인터넷 등 생활 기반 조성 부분도 쉽게 해결 될 것이다. 만약 단독 귀농이라면 이런 것들을 혼자서 해결하자면 힘이 들 것이다. 그런데 과연 공동체 생활에 적응을 할 수 있을까. 귀농하는 사람들은 개성이 강해 마찰이 생기고 그러다보면 공동체도 깨진다는데...
지난 1월 초 전북 장수군 계남면 백화산 중턱에 위치한 장수하늘소마을을 찾아가면서 이런 생각들을 떠올렸다. 과연 하늘소마을 주민들은 잘 살고 있을까.
대진고속국도 장수 IC를 나와 우회전 해 장계-거창 안의 방향으로 10여분 쯤 달려 자락정이란 표지판 앞에서 우회전했다. 머리 위로 고속국도가 지나갔다. 남산교를 건너자마자 우회전해 잘 포장된 아스팔트를 따라 올라섰다. 사방이 확 트인 고지대가 나왔다. 백운산 남덕유산 장운산 등이 한눈에 펼쳐졌다. 해발 500m의 매서운 겨울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은 길고 눈이 많은 지역이라고 한다. 면소재지보다 온도가 훨씬 낮았다.

길옆에 하늘소마을 화살표가 그려진 작은 팻말이 보였다. 팻말을 따라 눈으로 쫓아가 보니 산등성이 숲 사이로 집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장수하늘소마을 홈페이지에서 본 마을 입구 정경이다. 짧은 비포장도로를 벗어나 가파른 시멘트길을 올랐다. 눈이 녹은 후 얼어 부분적으로 빙판이었다. 언덕길 오른편에 비닐하우스가 일렬로 지어져 있다. 왼편에 각양 각색 형태의 집들이 들어 앉아 있다. 주민 허윤행 씨가 기자를 한 집으로 안내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깨끗한 거실에 어른과 아이들로 가득했다.

마을 위에서 내려다본 하늘소마을. 황토벽돌집, 목조주택 등 다양한 형태의 집을 지었다.
www.naturei.net 2006-01-16 [ 오현주 ]

이 마을 대표 문원산 씨는 전주에 볼일이 있어 나가고 대신 이진영 사무장이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사무장은 마을의 총무 역할을 한다. 생산물 판매 담당, 마을 체험 행사 유치, 소식지 발행 및 인터넷 관리와 마을 홍보 등의 일을 한다. 1년 임기로 군과 지자체 및 하늘소마을로부터 월급을 받고 일한다.
“다른 주민들은 일이 있어 참석 못 하시고, 여기 계신 분들은 일부러 시간을 내주셨어요.”
사무장 부부와 이 집의 주인 부부, 새로 입주한 부부와 두 아들과 지내는 주민 등 어른 7명이 모였다. 서너 살 된 아이들이 어른들 사이에서 놀고 있었다. 하늘소마을엔 현재 11가구가 살고 있다. 초창기 주민은 6가구이고 나머지는 중간에 들어왔다. 이진영 허윤행 씨 부부도 이곳에 온 지 1년이 채 안 된다.

대기업 직원 출신 허윤행 이진영 씨 부부

이씨 부부는 서울에서 들어왔다. 두 사람은 대학동기동창으로 나이도 37세로 같다. 허씨는 학교를 졸업하고 대우정보시스템에서 9년여 근무하다 회사를 그만두고 바로 귀농했다. 허윤행 씨는 대학 시절 농활 활동을 할 정도로 농촌 생활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실제로 허씨가 10년 후 시골로 들어간다는 말을 했을 때 이씨는 “나는 농사는 절대 안 지을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씨는 2001년경부터 건강 문제로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귀농에 동의하게 되었다.

허윤행, 이진영 씨 부부. 이씨는 하늘소마을 사무장을 맡고 있다.
www.naturei.net 2006-01-16 [ 오현주 ]

이씨가 사는 집은 원래 다른 사람이 들어오기로 했었다. 그 사람이 포기하면서 이씨 부부가 들어왔다. 집의 외형이나 구조가 자신들의 취향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사는 것이라고 한다. 27평의 일자형 목조주택이다.
“처음에는 과연 내가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밭에서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불확실한 마음과 두려움이 있었어요.”
허윤행 씨의 말이다. 물론 이씨 부부는 농사를 지어보지 않았다. 이론상으로 공부하여 밭에 적용하려니 어려움이 많았다. 노지에서 키우는 고구마는 필요에 따라 멀칭을 한다. 장수군 농업기술센터 직원이 멀칭을 하지 말라고 이들 부부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부부는 한 군데는 멀칭을 하고 다른 곳은 멀칭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멀칭 한 곳의 고구마가 더 풍성하게 잘 자랐다. 허씨는 "기술센터 직원의 말하고 다른 결과가 나온 셈이에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이들은 지난해 감자 고구마 토마토 고추 등을 지어 약 500만 원의 수익을 올렸다. 그 중 생산비가 150만 원을 차지해 순수익은 350만 원 선. 수확한 농산물은 부모님과 친지들에게 품값 정도만 받고 팔았다. 올해는 좀 더 많은 농사를 지을 계획이란다.
“풀을 못 잡아 그게 힘들었어요. 내가 농사를 지은 사실이 대견했습니다. 내 손으로 수확한 농산물을 함께 먹는 순간 보람을 느꼈습니다.”

하늘소마을은 친환경적으로 농사를 짓는다. 장수군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하는 순환농업단지이다. 순환농업이란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가축과 작물, 땅과 사람이 서로 주고 받고 먹고 하는 사슬고리형 농업을 말한다. 예를 들어 소의 똥(우분)을 퇴비로 해 토양을 기름지게 하고 그 토양에서 자란 쌀이나 작물을 사람이 먹고, 인분은 밭으로, 볏짚은 다시 소의 여물로 돌아가는 것이다.
살림도 친환경적이다. 이진영 씨는 “우리는 합성계면활성제가 들어간 화학합성세제와 치약 등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수종말처리장으로 가는 수세식 화장실이 아닌, 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친환경적인 화장실을 씁니다. 여름에도 재와 왕겨 등으로 덮어주면 냄새가 덜 납니다”라고 말했다.

하늘소마을 주민들은 비닐하우스에다 토마토 양상치 시금치 등 채소류 농사를 짓고 있다.
www.naturei.net 2006-01-16 [ 오현주 ]

하늘소마을은 총 경작지가 4천평이다. 11가구가 짓기에는 비좁다. 그래서 올해는 아랫마을의 농지를 빌릴 계획이다.
이웃 마을의 어른들은 처음 하늘소마을을 미심쩍은 눈으로 보았다. 젊은이들이 농사 짓는다고 시골로 들어와서 집만 번듯하게 지어놓고 풀도 안 벤다고 마음에 안들어했다고.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상견례를 하고 순환농업에 대한 이해를 가지면서 마을 어른들의 시선도 바뀌었다고 한다.

이씨 부부는 한 달에 70~80만 원의 생활비를 쓴다. 도시에서는 물론 100만 원이 넘었다. 이씨 부부는 삼형제를 두었다. 각각 11, 9, 4살이다. 아이들은 면에 있는 초등학교에 보낸다. 별 문제는 없다.
이씨 부부는 인터넷을 통해 바깥 세상의 뉴스를 접하거나 빔프로젝트 시설이 돼 있는 집에 모여 최근 개봉작을 감상하기도 한다. 이곳 생활이 무료하거나 답답하지는 않지만 장수나 장계 쪽에 문화 시설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이들 부부도 처음엔 공동체 생활을 걱정했다. 그러나 단독 귀농보다는 장점이 더 많아 이 곳으로 들어온 것이라고 한다.
“아이들도 또래이고, 주민들 연배도 30~40대로 비슷해요. 개성들도 확실하지만 좋은 점이 더 많아요.”
우선 다양한 경력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실제 이들의 전직들은 다채롭다. 대기업 직원, 농산물 유통업, 시민단체 근무, 방사능사, 컴퓨터 전문가, 영어학원 강사, 자영업자 등등.
두번째는 비슷한 정서를 가지고 있는 이들끼리 모여살아 덜 외롭다는 점이다. 농사를 업으로 해온 농민들과 도시에서 들어간 귀농인 사이에선 공통의 화제를 찾기가 힘들다. 이런 문화의 차이가 해소된다는 것이다.
세번째는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부의 입장에서 보면 아이들에게도 좋다. 또래 친구들이 많기 때문이다.
네번째는 협력해서 농사를 지으면 힘이 덜 든다는 점이다. 도시인들의 귀농 이유 중 하나는 건강한 먹거리이다. 이는 친환경으로 농사를 지어야 가능한 얘기다. 친환경적인 농사는 제초제를 쓰는 관행보다 훨씬 힘들다. 여러 사람의 힘과 지혜를 모을 경우 관행을 줄이고 친환경으로 가기가 수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편한 점도 있다. 그 중 하나가 도시적 정서와 시골 정서가 서로 부딪치는 경우이다.
“도시의 아파트는 서로의 사생활을 간섭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시골은 모두 열려있는 문화에요. 그런데서 오는 문제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진영 씨는 그런 문제들은 시간이 가면 해결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본다. 이씨 부부는 현재의 공동체 생활에 만족한다. 다시 도시로 나갈 생각은 전혀 없다고 한다.

숲 해설가 장상환 씨 부부

장상환 씨는 집 옆에 닭을 키워 신선한 유정란을 얻는다.
www.naturei.net 2006-01-16 [ 오현주 ]

이 날 그룹 인터뷰가 이루어진 집의 주인인 젊은 부부 장상환 김희정 씨도 도시에서 귀농한 케이스이다. 장상환 씨는 한국지반기술이란 토목회사에 근무하다가 도시생활을 더 이상 지속하기가 힘들었다. 회사를 그만 두고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실시하는 귀농교육을 받았다.

김희정 씨는 영어학원 강사이다. 도시 교육의 문제점이 부담이 됐고, 학원 강사란 직업에 대한 회의가 일었다. 이렇게 살아야하는가 하는 자괴감이 들어 도시를 벗어나 삶의 공간을 농촌으로 바꾸었다.
두 사람은 귀농을 원하는 선남선녀들의 모임 “녹색세상”에서 만나 결혼해 전북 진안으로 들어갔다. 장씨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기 보다는 숲해설가로 일할 생각을 했다. 이 분야를 공부해 자격증도 갖고 있다. 그러나 수익으로 연결이 되지 않았다. 산림청의 알선으로 운장산 휴양림에서 숲 해설을 하고 받은 돈이 고작 교통비 조로 4~5만 원에 불과했다. 그나마 일이 많지가 않았다.

김희정 씨는 시골 대안학교 교사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학교 측에서 기숙사 생활을 요구했다. 아이를 키워야 하는 김씨로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두 사람은 결국 원래 계획들을 포기하고 2년간 논 2천 평, 밭 400평에 농사를 지었다. 친환경으로 농사를 지었고 수확도 좋았다. 그러나 인증을 받을 수 없는 조건이어서 진안을 떠나게 됐다.
“우리 밭 옆이 인삼밭이었는데 약을 엄청 주더군요. 우리가 원하는 유기농을 못하겠더라고요. 결국 진안을 나와 지인의 소개로 이곳에 들어오게 됐어요.”

장씨 부부는 새로 집을 지었다. 지난해 7월 착공해 한 달여 만에 완공했다. 20평 규모의 조립식 건물이다. 집터의 한쪽이 다른 쪽 보다 낮아 석축을 쌓는데 힘이 들었다. 그 외에는 순조로웠다. 설계는 장씨가 직접 했다.
“간이도면을 그려 면에 내면 허가가 떨어져요. 집 짓는데 특별히 애를 먹지는 않았어요. 만약 시골에 혼자 땅 사서 집을 지었다면 훨씬 고생했겠지요. 이장이나 마을 주민들에게 일일이 도장을 받는데 시간이 더 걸리고 행정도 불편할테고...”

마을로 들어가는 길. 안쪽에 보이는 집들이 하늘소마을이다.
www.naturei.net 2006-01-16 [ 오현주 ]

난생 처음으로 집을 지어 그 만족감이 대단했다고 한다. 아쉬운 점은 돈을 좀 들이더라도 샌드위치패널로 된 외벽을 흙벽돌로 마감했으면 하는 점이다. 장씨는 단독 귀농도 해보고 공동체도 잠깐 경험을 해 두 가지 형태의 귀농에 대한 장단점을 나름대로 느끼고 있다.
“여기는 순환농업시범단지라 마을 발전 기획안이란 게 있습니다. 농산물 발효실 사업, 작업실 사업 같은 거지요. 이런 것들은 개인이 하기엔 너무 부담이 커요. 공동으로 할 경우 자기 부담이 적어서 좋다는 거지요.”
그러나 장씨의 경우 어린 아이들을 부부가 교대로 돌봐야 해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 장씨는 그런 점이 미안하다고 한다. 귀농자의 마을이라 정보를 많이 얻는 점, 기반 시설이 잘 돼 있는 점 등도 좋다고 한다. 단독 귀농일 경우 지원 사업 등에서 곧잘 소외된다는 게 장씨의 말이다. 장씨는 올해 주민들과 상의해 논 1천 평, 밭 800평에 농사를 지으려고 한다.

방사능사 출신의 김진달 씨

부산에서 올라온 김진달 씨(45)는 원래 방사능사였다. 20여년간 병원에서 엑스레이 촬영을 했다. 김씨는 시골 출신이지만 시골에서 살 마음은 전혀 없었다. 시골행을 원한 건 오히려 부인 쪽이다. 김씨의 아내는 부산에서 직장 생활을 해 아직 합류를 못하고 있다. 시골을 가자는 쪽은 안 올라오고, 원하지 않는 쪽이 먼저 들어온 셈이다. 김씨의 아내는 자녀 교육 문제로 시골행을 원했다. 입시 경쟁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하는 공부가 더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다.
“남들은 시골에서 도시로 나오는 판에 왜 시골로 들어가야 하느냐고 주장했지만 결국은 제가 (아내와의 싸움에서)진 거죠.”
김씨는 부산의 귀농학교 출신이다. 아내와 함께 집짓기, 농가 방문 등을 하며 귀농 교육을 받았다. 이 곳은 귀농학교 선배의 소개로 알게 됐다. 귀농학교 출신들의 카페 모임이 활성화 돼 있다. 카페를 통한 농산물 정보 교환 및 판매 등으로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다.

길 왼편이 밭과 비닐하우스, 오른편에 주택이 들어서 있다.
www.naturei.net 2006-01-16 [ 오현주 ]

김씨도 집을 지은 경우다. 2004년 5월에 들어와서 8월에 완공했다. 30평 규모의 집이다. 집이 완공되고 둘째 아들이 부산에서 올라왔다. 그리고 처음엔 안 온다고 했던 첫째 아들도 나중에 합류했다. 김씨는 2004년 10월부터 이곳에서 농사를 지었다. 토마토 양상치 고추 감자 콩 종류를 지었다. 수확량을 돈으로 환산하면 약 500만 원이다. 그러나 생활비로 들어간 돈이 1,300만 원이라 800여만 원의 적자를 본 셈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보람도 느낀다.
“농사 지면서 이이들 학교 보내는 일이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아내 없이도 나 혼자 살 수 있구나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랍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김씨는 혼자 농사를 지어보니 어려운 일들이 많았다고 한다. 액비를 뿌려준다든가 뭔가 줄 하나를 치려고 해도 누군가 잡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곳 하늘소마을은 여럿이 농사를 지어 좋다고 했다.
하늘소마을의 주민들은 모두 초보농사꾼이다. 그래서 장수군 농민대학도 다녔다. 지난해 6월부터 11월 사이 2주에 한 번씩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서툴다. 농사 지으면서 간간이 아랫마을 어른들에게 물어보기도 한다고.


하늘소마을에서 내려다본 장수 장계면. 대진고속도로가 지나간다.
www.naturei.net 2006-01-16 [ 오현주 ]

지난해 말, 주민 가운데 한 사람이 허리를 다쳐 농사를 짓기 어려워 불가피하게 마을을 떠나야 했다. 부산에서 농협중앙회에 다니던 김지탁 씨(53) 정미영 씨(51) 부부는 그 주민의 집에 최근에 입주하게 됐다. 김씨는 이 마을의 최연장자가 됐다.
이들 부부는 귀농을 염두에 두고 실속 있는 농사 교육을 받았다. 경남 하동 자연농업문화센터에서 있은 자연농업 기본 연찬도 부인과 함께 받았다. 김씨는 귀농학교 동기생의 소개로 이 마을을 알게 됐다. 김씨의 집은 마을 맨 위에 있는 일자형집으로 커다란 창고가 딸려 있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 여러 곳을 알아봤어요. 시골이라도 땅을 사서 집을 지으려면 이 집 정도의 돈은 들더라고요." 농사 경험이 전혀 없는 김씨는 자급자족의 원칙을 가지고 농사를 지을 생각이다.

하늘소 마을은 2003년,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며 귀향을 생각하고 있던 김영규 씨가 귀농을 준비 중인 도시인들을 인터넷 상에서 모으면서 출발했다. 그는 “귀농자 몇몇이 모여서 잘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고령화 돼 가는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고, 건강한 먹거리를 직접 생산하기 위해 모였다”고 취지를 밝혔다. 당시 서울 부산 수원 등지의 20대후반~40대 초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뜻을 같이 했다. 대학교수, 전직 기업인, 방송국 PD, 대기업 직원 출신 등이었다. 인근 마을에서 2가구가 참여했다.

같은 시기에 장수군은 순환농업시범단지를 조성한다는 소식을 군 홈페이지에 알렸다. 인터넷으로 부지를 매입 중이던 김씨 등은 이 소식을 접하고 장수군과 접촉했다. 장수군이 3억여 원을 들여 마을 부지를 조성하고, 전기 도로 수도 시설 등을 해주고, 김씨 등은 '하늘소 영농조합'(출자금 1억4,000만원)을 설립해 함께 마을을 만들기로 했다.
같은 해 12월부터 김씨 등은 집짓기 작업에 들어갔다. 이들은 목수·인부들과 함께 어울려 벽돌을 찍고 대패질을 했다. 황토집· 흙벽돌집· 목조 주택 등 다양한 형태로 지었다.

마을 문화재 자락정.
www.naturei.net 2006-01-16 [ 오현주 ]

하늘소마을은 처음 9가구, 42명으로 출발했다. 그 가운데 개인적인 사정 등으로 대부분 나갔고 처음 집을 짓고 밭을 일구는 등 마을의 뼈대를 만든 창촌 가구는 6가구이다. 마을을 기획한 김영규 씨도 지금은 없다. 현재 하늘소마을은 11가구이며 집이 하나 비어 있다. 하늘소마을 대표를 맡고 있는 문원산 씨는 창촌 멤버이다. 문씨는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새입주자의 자격은 마을 주민 전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주민들이 반대해서 못 들어온 분은 한 분도 없었어요.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아 포기한 분이 있었지요. 마을의 공식적인 회의에 2차례 이상 참석하라는 조건도 있습니다만 그 보다는 마을에 일주일 정도 머물면서 이 집 저 집 다녀보고 마을의 흐름을 몸으로 느낀 후에 들어오길 권하고 있습니다.”

문 대표는 “우리 마을은 공동체라고 말하기도 뭐해요. 각자 자기 나름대로 사는 겁니다. 농사도 자기 밭이 따로 있어요. 함께 모여서 산다는 의미만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하늘소 주민들은 초창기에 수많은 갈등과 화합의 시간을 보냈다. 군 직원과의 신경전, 이기심과 의타심에 의한 순간적인 분노와 좌절...눈물과 화해와 웃음으로 보낸 잊지 못할 시간들이었다. 회의도 수없이 했다. 회의를 위한 회의를 할 정도였다. 호칭 문제부터 회의 석상에서의 에티켓- 술과 담배를 피우지 말자는 얘기도 나올 정도였다. 지금은 회의가 많이 줄었다. 거의 없을 정도라고. 그만큼 안정됐다는 얘기이다.

마을 밖으로 나가는 길.
www.naturei.net 2006-01-16 [ 오현주 ]

하늘이 맑고 투명한 겨울 어느날 오후 2시에 시작한 하늘소마을 취재는 오후 5시 넘어 해가 저물 무렵에야 끝났다. 자리를 뜨는 기자에게 하늘소마을의 사무장 이진영 씨는 “우리 마을을 미화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써주기를 바랍니다.”라고 주문했다.
백화산을 내려오며 처음 이 마을을 찾았을 때의 궁금증은 기우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을 주민들은 서로 양보할 것은 양보하면서, 마을 전체 일에 협조할 것은 협조하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시골 생활을 해나가고 있었다.
2006-01-16 11:43:52 ⓒnature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