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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석&희정/일상

칼럼]서울토박이의 시골살이

봄입니다. 초록잎들이 기분을 상쾌하게 해줍니다. 아침이면 창문을 열고 생생히 들려오는 새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듯 “오늘도 명쾌한 하루가 시작되는구나!”하고 읊조리게 됩니다. 저희는 작년 이맘때 전북 장수로 이사왔습니다. 주변에 많은 분들이 둘다 서울토박이인 저희 부부가 전라도로 이사간다고 할 때 엄청나게 반대했었습니다. 하지만, 자연에서 아이를 키우고픈 마음, 또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 푸른 자연환경과 아름다운 새소리와 물소리를 벗삼아 살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그래서 반대하는 분들을 열심히 설득했죠. 힘들어도 건강하게, 소박하게, 행복하고 여유롭게 살고 싶다면서.

 

시골살이

“오늘이 무슨 요일이야?”

“글쎄. 오늘이 며칠이지?”

도시에서 살 때는 평일과 주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골에서 농사를 시작하니 ‘해요일’과 ‘비요일’이 있습니다. 해가 뜬 날에는일하고, 비오는 날은 쉽니다. 작년 11월에 마늘과 양파를 심기 시작하면서 저희는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첫농사라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나 손이 느리고 서툴러 더디기만 합니다. 그때만 해도 아들이 막 돌이어서 녀석을 업고 일을 하니 저도 아이도 같이 힘이 들더군요. 결국 하루 일하고 일주일 쉬고, 그래야 했습니다.

작년 겨울, 난방을 시작했습니다. 저희가 살게 된 집에는 화목보일러와 LPG가스보일러가 있습니다. LPG보일러는 편리하기는 한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듭니다. 가스 한 통에 4만 원 정도 하는데, 이 보일러로 집안을 18도 정도로 하루 종일 난방하면 3일에 한 통씩 소비됩니다.

화목보일러는 집안을 따뜻하게 하는 데 하루 정도 시간이 걸리는데, 따뜻한 물을 계속 사용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화목보일러를 사용하는 것이 낫습니다. 하지만 땔감 구하는 일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산림조합에 전화해서 어렵게 벌목한 나무를 구하기로 했는데, 저희가 사는 동네가 산 아래이다 보니 운반비가 많이 든다고 가격을 훨씬 비싸게 부르더라고요. 그렇게 나무를 구입해, 보일러에 사용하기 좋은 크기로 잘라 말리면 훌륭한 화목보일러의 연료가 됩니다.

동네 몇몇 분들이 연탄보일러로 교체하라고 권하시는데, 보일러 교체비용이 만만치 않을 뿐만 아니라 수명이 고작 3년 정도라는데 열효율도 매해 떨어진다고 해요. 어떻든 첫해 저희의 시골살이는 매우 추웠답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집안을 따뜻하게 해줬던 도시가스의 편리함이 그립기도 했죠.

 

돌봄

아이를 낳아 키우기 시작하면서 저는 건강한 환경, 건강한 먹을거리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생태농업을 하기는 어려워도 최소한 유기농업을 해야 한다고 결심했죠. 한 작물이 건강하게 잘 자라기 위해서는 건강한 땅에서 충분한 영양분을 먹으며 스스로 면역체계를 갖추어야 각종 질병이나 곤충의 공격에 잘 버틸 수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건강한 작물이 주는 영양은 약에 의존해서 자라는 작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유익하다고 해요.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화학비료는 땅속에 다 흡수되는 것도 아니고, 한 가지 영양분만 과다하게 많아서 영양분의 균형을 이미 깨뜨린 상태이죠. 살충제, 제초제와 같은 농약은 생명을 죽이는 것이니 반드시 잡초만, 반드시 해충만 골라 죽인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사람의 몸에 축적되어 질병을 유발하는 데에도 일익을 담당하니까요.

사람이 건강히 살아가기 위해서는 먹는 것도 사는 곳도 건강해야 합니다. 환경이 되어주는 자연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일은 최소로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유기농업을 한다고 해도 내가 선택한 작물과 경쟁하듯 자라나는 다른 식물들을 제거해야 하니, 여전히 저는 고민이 많습니다.

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엄마 뱃속에서 10달 동안 있다가 나온 아기는 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서 애를 참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주 아프기도 해요. 아이돌봄이 처음인 저는 출산과 함께 제가 뭔가를 잘못해서 아이를 힘들게 할까 봐 걱정이 많았습니다. 임신중 수많은 책을 읽으며 준비했는데도 정작 실제상황이 벌어지니 머릿속이 하얘지더군요. 다행히 제 지인 중에 소아전문 한의사가 있어서, 아이가 아플 때마다 친절하게 상담해주었습니다. 그 친구는 한약재도 친환경유기농만 사용하고, 저보다 먼저 아이 둘을 키운 엄마이기도 합니다. 그 친구는 저에게 자주 이렇게 조언해주었습니다.

“아이가 세상에 나와 온 힘을 다해 적응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아이가 건강하려면 스스로 면역력을 갖도록 도와줘야 해요. 외부에서 투입되는 것을 최소화해야 해요.”

덕분에 소심하고 걱정많은 엄마인 제가 아이에게 예방접종 안 하고, 항생제나 해열제도 거의 먹이지 않고 스스로 이겨낼 수 있도록 아이를 응원하며 17개월을 키웠습니다. 그래서인지 2.66kg였던 작은 아기가 밥도 잘 먹고, 환경이 바뀌어도 잘 적응하고 아주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한의사 친구에 의하면 다른 아이들보다 건강하다고 하더군요.

 

적응

시골살이 1년차, 또 초보농부로 살고 있는 저희 가족에게 소위 ‘전원생활’의 한가로움이나 삶의 여유는 아직 없습니다. 비요일에도 일을 해야 할 만큼 할 일도 많아,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곧바로 지쳐 쓰러집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데도 불구하고 지금 저희 수준으로 농사를 지으면 생계유지가 어렵습니다. 심지어 저희 밥상에 올라오는 모든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것도 버겁습니다. 생계를 위한 돈벌이(일자리)를 병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농촌의 살림살이는 저희가 예상했던 것 그 이상으로 힘겹습니다. 하지만 봄과 함께 저희 집 마당에 찾아온 꽃들, 다양한 새들, 개구리, 도롱뇽 등 살아 움직이는 다양한 생명을 만나면 살림살이의 힘겨움을 잊고, 가슴이 설렙니다. “하나님이 좋다고 감탄하셨던 그 생명이구나! 여기가 바로 천국이구나!”하고 탄성을 발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희 부부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사서 고생하고 있는 거야. 그래도 도시에서 살 때보다 여기에서 사는 게 좋아. 다시는 서울에서 못 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