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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지 않고 가야 내 감성대로 영화를 볼 수 있기에 아무고민없이 영화를 보러갔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한 자원활동가의 목소리를 통해 호돌이,호순이의 손주 "크레인"과 주변인들을 만났다.
크레인은 호랑이도 고양이도 아닌 정체성이 모호한 아기 호랑이 였다.
야생에 있던 동물들이 동물원이라는 공간에 갇혀버리게되면 그 갑갑함을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동물원사육사는 야생동물을 길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아기 호랑이 크레인을 강이지에게 하듯 목줄을 달고,
작은 박스로 만든 곳에 살도록 훈련시켰다.
목줄이 많이 가려운 것 같다. 그러나 그 목줄은 아무도 풀러주지 않았다.
그느 새 야생의 호랑이가 작은 박스공간안에 웅크리며 자고있었다.
그 박스안으로 들어가기 전
크레인은 다락방과 같은 곳에서 생활했다.
자원활동가가 크레인을 그곳에 데려다주고 문을 닫아버렸다.
나무문 사이로 혼자가 되어버린 크레인은 쉼없이 울부짖으며 문을 긁어댔다.
그 모습속에 내 모습이 투영되어 결국 내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난 2년동안 스리랑카에 살았었다.
그 2년동안 위염과 열병 및 풍토병으로 스리랑카 병원에 2번이나 입원했었다.
처음에는 호텔같은 병원이라 맘껏 티비보며 쉴수 있어 좋았다.
그러나 간호해주는 사람없이 혼자 독방에 있었던날, 처절한 고독을 느꼈다.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나라에서 열병과 풍토병에 걸려 혈소판 수치는 최악으로 떨어지고
계속되는 약물투여로 온몸은 괴물처럼 부어갔다.
독한 약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다 배가 너무 아파 기절할 것 같고,
몸은 얼룩덜룩 붉은꽃이 전신에 피어있었다.
먹지도 못하고, 몸은 괴물같고, 외롭고 두려운데
병실문을 나서는 순간 사람들은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갑갑했다.
아픈 나를 도와주는 고마운 사람들이지만,
내겐 그 사람들은 거추장 스러운 주변인일 뿐이었다.
그냥 확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 느꼈던
"이렇게 사는것은 죽는이만 못해"
그때의 나의 감정이 크레인의 모습과 오버렙되었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야생동물들이 나에게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외로워
갑갑해 죽을꺼 같애
제발 날좀 내버려둬~~~
영화속에서 우리를 크레인에게 안내해줬던 자원활동가 친구의 인터뷰가 나왔다.
동물원에 대해서, 그녀는 멸종위기동물을 보전하기 위해 동물원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둥물원에 있는 동물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자유를 잃어버리고, 병든몸으로 종족번식을 하고있는 그 자체가 정말 의미있는 일일까?
과연 누구를 위한 보호활동이고, 무엇을 위한 것일까?
크레인은 아직 살아있다고 한다.
근데, 그녀석은 살아서 행복할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영화를 보며 뱉어놓은 나의 괴로운 질문에
우리함께 힘을 모아 희망을 답을 만들어 갔으면 한다.
교육적인 목적이던, 종족보전의 목적이든, 우리나라에 들어온 야생동물들이
사는 동안만큼은 조금이라도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그들이 살던 곳과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동물원의 환경변화가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