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팀 프로젝트 마무리 단계였을겁니다.
가공센터 건축담당이었던 저는 건축회사 사장을 상대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가급적 마을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는 건축회사를 찾다가 마을주민이 사장인 곳에서 일을하는데...
이 사람이 돈독이 오른것인지...ㅠ.ㅠ 생각만큼 잘 해주지를 않았습니다.
일을 잘 해야 돈도 지불할 수 있는것인데, 이래저래 건축이 늦어지면서 저도 많이 예민해져 있기도 했구요.
결국 코워커, 스님 그리고 사장과 회의를 하기로했는데,
그 자리에서 사장이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하기에 처음으로 책생을 치며 화를 냈습니다.
"당신, 왜 말을 지어서합니까? 내가 언제 그런이야기를 했나요? 내가 언제 당신과 약속을 어긴적이 있나요? 돈을 안주긴 누가 안준다는 거예요? 당신이 지금 공사를 제날짜에 안하고있는거 아닙니까? 당신이 상상한건 그걸로 끝내야지 왜 그걸 사실처럼 혼자 생각해서 나에게 협박을 하는거냐구요? 내가 여자라고 함부로 하는겁니까? 내가 어리다고 이러는건가요? 내가 지금 여기에서 하는 일을 당신보다 어린 여자로써가 아닌 한국과 스리랑카정부의 협약에 의해 한국 대표로 와서 일을 하는겁니다. 그러니 예의를 갖춰주세요!!"
저의 코워커, 스님 모두 당황하셨습니다.
사실 저도 무슨깡으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전화를 해서 자기가 원하는 말만 하고 끊어버리는 예의없는 이 사장의 태도에 정말 화가났었습니다. 뿐만아니라 계약할떄와는 다른 태도. 또 공사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처하는 태도도 말이죠. 하도 답답해서 건축, 토목으로 파견나오신 분들과 상의해보니..."그바닥이 좀 험해~" 라고 하시네요.
협동조합을 정부에 등록하는 일도 공무원들이 자꾸 늦장을 부리고...
팀원 중 마음을 의지했던 언니는 귀국을 한 상황에서 다른 두 팀원들과 이 빡빡한 상황을 헤쳐나오는 것이 저에게는 많이 벅찼떤 것 같습니다. 팀장이란 자리가 늘 그렇듯 외롭기도 하고...
일은 많고, 먹는건 부실하고...갑자기 열이 나더니 배도 아프고 죽을것같더군요.
같은 지역 단원들에게 연락을 해서 병원에 입원을했죠.
하루이틀 사이 괜찮아지기에 퇴원을 했는데...
허걱...혼자 집에오니 온몸이 쑤시고 열이 펄펄...
결국 밴을 빌려 팀원들과 함꼐 수도에 있는 제일 큰 병원으로 왔습니다.
응급실에서 다인실병동으로 옮겨 이러저런 검사를 받는데 댕구열병이라네요.
그리고 너무 자연스럽게 혈소판과 백혈구 수치가 너무 낮아 수혈을 해야한다고 합니다.
수혈은 하지 않겠다고 끝까지 버티면서 일인실병동으로 옮겼는데...사실...그 다음부터는 거의 기억나는게 없습니다.
갑자기 스리랑카에 있던 AB형 단원들이 병원으로 다 모였다가,
태국으로 가야한다고 했다가
코이카 사무실분들도 다들 내 병실에 계셨다가
내 몸은 풍선처럼 부풀어올라 거의 괴물이 되었다가
다시 온몸에 붉은 점들이 올라와 붉은 괴물이 되었다가...
근 10일을 넘게 배가아파 과일로 연명하다 겨우겨우 집으로 돌아왔던...
많이 아프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그 순간
2012년
서울 시댁제사 준비를 끝냈는데
발바다도 아파서 힘든데 갑자기 오한이 몰려오네요.
머리도 아프고...잠시 쉰다고 방에 들어갔는데...
막상 제사시간이 되지 몸을 맘대로 움직이지 못하겠고, 제사가 끝날때가 되니 속이 울렁거려 결국 자리에 누웠습니다.
괜찮을꺼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남과 동시에 열이 치솟고 머리도 아프고 몸도 쑤시니 죽겠더군요.
결국 밖에 있는 신랑에게 전화했습니다.
"방안으로 들어와 나 좀 도와줘~~"
"나 너무 아파 너무 아파 죽겠어. 약을 먹었는데도 열이 자꾸 나. 나좀 살려줘~~"
신랑이 많이 놀라네요. 결혼해서 간간히 몸살도 오고, 또 위가 아프기도해서 의원도 다녔었는데...이번처럼 죽을것같이 아픈건 처음이네요. 근 2틀동안 열이 38도에서 39도를 왔다갔다 하다가 떨어지긴했는데, 머리가 흔들리면서 아프고 목이 너무 아프더군요. 순간 우리 인태가 이렇게 아팠겠구나!!!했습니다. "우리 쑝이도 이겨냈는데...나도 이겨내야지!!나도 이겨내야지..."다짐에 다짐을 했습니다. 신랑도 제 옆에 꼭붙어서 이것저것 해달라는데로 다 해주고. 시부모님은 급기야 인태를 데리고 주무시는 정말 힘든일도 해 주셨습니다.(인태는 아직 모유수유중이라서 제옆에서 떨어져 잔 일이 처음입니다). 인태도 아픈 제 옆에와서 애교떨고, 잘 해주지도 않는 뽀뽀를 해주고...^^;;;;
그렇게 아픈지 일주일이 다 되어가네요.
아직도 목이 너무아파 밤에는 잠자기도 어렵긴 하지만...
이번에도 5년 전 댕구열병을 앓았을때 처럼 정말 많이 아프고, 또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시금 생각나게 해 주셔서 더 감사합니다.
그리고 수혈받지는 않았지만, 타국땅에서 저에게 피를 나눠주겠다고 한걸음에 와준 랑카의 AB형 단원들께, 저와 고통을 함께 해주었던 동료들, 정신없는 행정절차 모두 해 주신 코이카식구들 그리고 랑카친구들께 여전히 감사합니다. 죽을때까지 잊을 수 없을꺼예요~
프로젝트 끝내가 세레모니하는 날. 오른쪽 위는 협동조합을 맡았던 정학이. 왼족위는 가공센터
성희가 진행한 마을우물사업
세레모니에 참석한 아이들 그리고 마을 캔디안 댄서들~ 스리랑카에서는 큰 행사는 캔디안춤이 빠지지 않죠~
가공센터를 둘러보는 사람들. 그리고 시운행을 진행하는 분~
행사장으로 이동중~ 마을 절에 있는 공간에 만들어 놓은 컴퓨터센터. 마을 아이들, 스님들에게 컴퓨터교육을 진행했던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