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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석&희정/일상

당신은 어쩜 그래요?

도서출판 '니'의 요청으로 작성했던 글~
6월에 나올 '니와 함께 사는 남자들'편에 실릴 우리들의 글이다. 결혼생활 1년, 우리들이 많이 자라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내와 ‘함께 살이’를 시작한지 1년. 그 동안 내가 참 많이도 아내에게 했던 말은 ‘당신은 어쩜 그래요?’였다. 서로가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데, 시시때때로 기존 자신의 틀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을쏘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좀 당연히 이해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오류를 범하곤 했다. -봉석


나, 이제 돈가스 안 구워!


시어머니가 고기를 사다가 돈가스를 직접 만들어 주셨다. 돈가스를 굽는 나의 방법은 기름을 잔득 넣고 튀겨내는 것이었는데, 남편은 기름을 조금만 넣고 잘 익혀 먹으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생각만큼 작 익지는 않고 돈가스는 검게 탔다. 오늘은 불 조절을 잘 해서 태우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또 타기 시작했다. “돈가스 탄다”라고 말하니 남편이 바로 큰 접시를 꺼내어 “여기다 덜어놔.”라고 했다. 순간, 내가 담으려 했던 접시가 아니라서 “그 접시 말고 저쪽거로 꺼내 줘”라고 했더니 “그러는 동안 돈가스가 타잖아. 접시가 무슨 상관이야 그냥 여기다 놔!”하는 짜증 섞인 그의 말에 순간 움찔 했다.


밥상을 차리면서 친정어머니가 주신 겉절이를 놓고 밥을 먹는데 그가 말한다. “우리 어머니께서 주신 김치는 왜 안 먹어?” “겉절이는 빨리 먹어야 하고, 그냥 김치는 좀 익혀먹어도 돼서 그냥 겉절이만 꺼냈는데?” “나, 우리 어머니께서 주신 김치 먹고 싶어.” 순간 기분이 상했다. 그 밥상 위에는 내가 만든 음식도 있고, 우리 어머니가 만들어 준 김치도 있는데, 굳이 저렇게 말해야 하나 싶었다. 접시도 내가 원하는 것을 달라고 해도 안주고, 드라마에서처럼 맛없는 음식을 먹어도 “진짜 맛있다! 우리색시가 만든 건 뭐든지 맛있어!”라는 말을 해주기는커녕 돈가스 태운다고 짜증부리고, 자기 엄마가 만든 김치 꺼내달라고 하고. 왠지 열심히 밥상을 준비한 나의 노력은 모두 무시당한 듯 기분이 나빴다.


순간 나도 모르게 “나, 이제 돈가스 안 구워!”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랬더니 그가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거야?”라고 말하는데, 너무 어의가 없다. 화가 난 그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데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들이 지나간다. ‘내가 이러려고 결혼한 거 아닌데.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내가 퇴근하고 돌아와 이렇게 밥상 차려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데 나한테 소리를 질러?’ 순간 서러움과 화가 몰려왔지만, 이런 나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왠지 유치한 것 같아 숟가락을 내려놓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분함과 서러움으로 눈물까지 주룩주룩 흘렀다.


한참을 울고 있는데, 그가 방으로 들어왔다. “얘기 좀 해.” 그의 얼굴을 보니 여전히 잔뜩 화가 가득하고, 나에 대한 미안한 표정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화가 나기도 하면서도 무서웠다. ‘내가 이러려고 결혼한 것은 아닌데…’ 모든 것이 후회로 느껴지면서 이 사람을 우선은 피해야겠다는 생각에 옷을 걸쳐 입고 나가려는데 그가 잡았다. “어디 가려고?” 딱히 갈 곳도 없는 낯선 이곳에 내가 마치 혼자 있는 듯해 서러움이 더더욱 밀려와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울다보니 온 몸에 기운도 다 빠져 쓰러질 듯한데, 그가 나를 잡더니 미안하다고 한다. 뭐가 미안한지를 아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그가 미안하다고 하니 화난 마음은 풀렸다.
-희정


잘하는 것이 있다면 못하는 것이 있을 수 있고, 또 무엇을 잘하고 못하고는 기준 따라 달라지기 마련인데 나의 생활방식에 아내를 두고서 섣부르게 생각했다. 아내가 돈가스를 태운다면 내가 구울 수도 있는 것인데 그땐 그러지 못했다. 지금이야, 서로의 입맛이 어울리고 있지만 ‘돈가스 사건’이 있었을 당시만 하더라도 서로의 입맛이 달랐다. 김치찌개는 김치도 넣지만 돼지고기가 없으면 맛이 살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던 나인데, 희정 씨는 한 번도 김치찌개에 돼지고기를 넣어서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맛을 보여줄 수밖에…. 지금은 아내도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도 맛있다고 한다. -봉석


나한테 잘 보이려 살지 마. 그냥 당신대로 살아.


내 친구들은 우리의 생활을 듣고는 “네가 그렇게 꽉 잡혀 살줄은 몰랐어!”라며 반응을 보였다. 그럴 때면 “그게 편해!”라고 대답했지만, 괜스레 내 자존심에 흠집 난 것 같기도 했다. 이 이야기를 남편에게 전하니 “잡혀 사는 게 뭐야?”라며 남편이 좀 어이없어 했다. 이야기가 꼬리의 꼬리를 물고 진척되다 보니 결국 상대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눈치를 보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보다는 그가 좋아하는 것을 한다는 이야기까지 하고 나니 그가 정색을 한다. “나한테 잘 보이려고 살지 마. 당신은 그냥 당신대로 살아. 나도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잖아. 상대한테 잘 보이려고 하면 얼마나 피곤해? 그냥 그렇게 서로가 원하는 방향대로 살면 되지.” 그의 말을 듣는데, “그래도 되는 거야? 그럼 서로를 별로 의식하고 않는 거 아냐? 그래도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보여주는 게 예의가 아냐?” 또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희정


어려서부터 교회문화권에서 살면서 남들에게 자신을 잘 보여주길 노력했던 아내. 남을 의식하기 보다는 내안의 소리에 귀 기울였던 나. 그런 아내가 내게 보여주기 위해 애쓴다는 것을 알았을 때 순간 당혹스러웠다. ‘왜 내게 잘 보여야하지?’ 그저 자신을 그대로 보여주고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함께 살이’거늘…. 아내의 그런 모습을 알게 된 후, 종종 질문의 질문을 거듭하면서 아내의 뜻을 찾곤 한다. ‘남을 위함이 아닌, 남의 소리도 아닌, 당신 안에서 울리는 소리를 들려주세요~’라면서 말이다. -봉석


함께 살이


우린 30여 년 동안 서로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이다. 어찌 같아야 한다고, 그것이 옳다고 할 수 있느냐 말이다. 서로 다름이 어울림을 낳는다. 그렇게 사는 것이 ‘함께 살이’가 아닐까? 서로의 의견이 달라 갈등하는 것을 피하기보다는 갈등을 마주하고 서로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나눠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 그 마음이 우리 부부에게 조금씩 찾아오고 있음을 느낀다. 갈등을 피하지 않고, 갈등을 마주했던 그날의 감동을 우리 부부는 알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우리의 ‘함께 살이’가 참으로 기대된다.-봉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