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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이야기

내게 농사는 여행자들의 인도와 같다.

2005~2007년

스리랑카 캔디에서 지내면서 인도여행자들을 참 많이도 만났다.

인도여행자들이 스리랑카에 많이 오는 이유는 비자연장때문이었다.

스리랑카를 좋아했던 나는 인도여행자들에게 스리랑카와 비교해서 질문을 많이 했었다.

왜냐하면 내가 만난 인도 여행자 10이면 10모두 인도여행은 최고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인도가 어디가 그렇게 좋아요?

"다 좋아요. 매이매일 역동적이고 새로워요."

"스리랑카와 비교하면 어떤데요? 랑카보다 깨끗해요? 친절해요? 화장실다니기는 어때요?"

"더러워요. 친절하지도 않고. 하지만 특별한 것이 있어요. 꼭 가보세요. 인도는 정말 특별한 곳이예요."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아무리 인도가 좋다고 이야기해도 "가볼까?" 했다가 "별로"하며 그만뒀다.

 

그런데 오늘 밭에서 일하다 문득 인도여행자들이 갖는 느낌이 이런걸까? 싶었다.

 

사실...

농사지어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농장을 잘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정도다.

몸이 힘들어 죽는다. 내 체력이 이정도밖에 안되나 하며 매일 체력의 한계를 실감한다.

피부도 점점 엉망이 된다. 주름과 주근깨가 늘고있다. 손도 점점 엉망이 되어간다.

내가 언제 멋지게 옷입고 다녔던가 싶을 정도이다. 그렇게 좋아했던 하이힐에 먼지가 쌓이다 결국 한 쪽 구석에 들어가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2년째 농사를 짓고있다.  

또 다 접고 서울로 돌아오라는 이야기를 2년째 듣고있다.

근데...

 

오늘 무지하게 피곤한 몸으로 밭에서 일하면서

"아~좋다. 정말 행복하다. 너무너무 좋다."를 반복적으로 외쳤다.

 

길가에서 만난 뱀을 만나도 서로 갈길가자며 이야기 할 수 있고

밭에 찾아온 참새가 뭐하나 한참 구경하기도 하고

뭐하다 그랬는지 앞다리 하나가 부러진 사마귀를 보고도 참 반가웠다.

비닐멀칭을 벗겨낸 흙에게 미안했고 또 고마웠다.

 

 

 

 

그리고...

 

더이상 비닐을 사지 않을 수 있도록 작물재배의 멀칭재료에 대해 더 공부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배추를 다 먹어버린 다양한 곤충들을 알아보고 싶어졌다.

어떻게 하면 가뭄에 작물들이 잘 버틸 수 있는지 찾아보고 싶어졌다.

어떻게 하면 장마로 인해 병에 걸리는 걸 막을 수 있는지 더 연구하고 싶어졌다.

이미 나와있는 재배작물궁합말고 내가 재배하면서 재배궁합을 찾아내고 싶어졌다. 고추와 생강처럼.

 

 

 

 

이 경험과 배움이 쌓이고 쌓이면

다시 먹고사는것이 어려운 이들을 만나러 가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날이 기대되니 오늘의 수고가 얼마나 값진것인지 또 얼마나 귀한것인지 감격스러워졌다.

 

세차게 부는 바람으로 나붓기는 낙엽소리에 조물주의 존재가 느껴진다.

오늘도 이렇게 살아서 움직인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일인지 나도 모르게 "고맙습니다."인사했다. 

 

잘 모르겠지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오늘 하루만 느끼는 감정이고 감격일 수도 있겠지만

오늘 나는 이 알 수 없는 감격에 푹 빠져 행복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언젠가는 다른 여행자들이 느꼈던 그 감정을 느끼러 인도에 가봐야겠다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