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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나라살이/필리핀이야기

꾸야 크리스

졸업식 있던 날. 이제 CLSU를 떠나는 사람들과 남는 사람들이 학교 근처 작은 바에 가서 노래방기기 틀어놓고 춤을 추며 마지막밤을 보냈다. 행복한 밤이었다. (내 뒤와 앞에는 태국 학생들 그리고 벨로우즈와 꾸야 크리스)

꾸무스따 뽀(잘 지내세요)? 아저씨가 사는 섬도 태풍 때문에 피해가 많았나요? 오늘 뉴스에서 태풍 켓사냐가 메트로 마닐라를 강타해 많은 사상자와 이재민이 생겼다고 보도하더군요. 물론 아저씨가 사는 곳에서 먼 지역 이야기지만 전화 수신도 잘 안 되는 섬에 사는 아저씨 는 괜찮은지 걱정이 되네요.

정전되던 날 기숙사에 있던 여러나라의 학생들이 한가지씩 음식을 해와 함께 나눠먹었다

한편 전 필리핀에 있으면서 태풍으로 누릴 수 있었던 즐거운 시간이 생각나 웃게 되네요. 그 때 기억나죠? 아저씨는 졸업고사 준비 중이었고, 난 마지막 학기였죠. 태풍으로 학교 내 나무 몇 그루가 쓰러지고, 기숙사 앞 도로는 발목까지 잠겨버리고. 정전으로 수업도 못하고 비가 그치길 기다리며 무료하고 기숙사에 있을 때 아저씨가 기타 치면서 노래하기 시작하더군요. 그 노래 듣고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같이 노래 부르다가 식사시간 되니 모인 사람들이 요리 하나씩 만들어 와서 촛불 켜고 함께 식사했었잖아요. 읽어야 하는 책은 산처럼 쌓여있어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학생들 대다수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서로 위로하면서 각자 자기나라, 동네 그리고 자기이야기들을 나누었죠. 지금 생각하면 책 이외에 그렇게 사람을 만나면서 배운 것들이 더 많이 남은 것 같아요.


벌써 5년이 지났네요. 아저씨는 여전히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고 계시겠죠? 전 졸업 후 한국 정부기관 연구소에서 잠시 일하다가 정부파견 봉사단으로 스리랑카에 다녀왔어요. 그리고 지금은 환경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고요. 필리핀에서 돌아왔을 때만해도 바로 지역으로 내려가 농부가 되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 됐어요. 뭐 그래서인지 한국에 돌아온 지 일 년도 안 되서 다시 열대농업국가인 스리랑카에 가서 향신료 농부들이랑 일을 하는 좋은 기회를 얻었었죠. 그리고 그곳에서 알게 된 친구와 얼마 전에 결혼했어요.

  기쁘시죠? 가까이 살았다면 아마 제일 처음으로 결혼식장 와서 축하해 주셨을 텐데, 아저씨를 초대할 수 없어 속상했어요. 게다가 지금은 연락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니 제 마음 아시죠? 지금 신랑이랑 연애시작하면서 결혼하기 까지 줄 곳 아저씨 생각이 났어요. 남자를 못 믿겠다, 결혼은 꼭 해야 하는 거냐며 묻는 저에게 아저씨는 그랬잖아요. “결혼은 마술 같아. 생각해봐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어느 한 사람이 자기의 길을 가다가 어느 순간 내 앞에 서 있다는 거. 신기하지 않니? 나도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부인이랑 만난 거 생각하면 아직도 떨려. 결혼을 될 거란 생각을 전혀 못했거든. 그리고 이 사람이랑 결혼하니까 너무 좋아. 애들을 낳아봐. 또 신기하다.” 연애와 결혼이야기가 한번 터지면 끝을 모르고 말씀하셨던 아저씨와는 달리 회의적이었던 제가 지금은 예전 아저씨처럼 결혼 예찬을 하고 다녀요. 신기하죠?

 

함께 자전거 산책하던 꾸야 크리스

해질무렵 물댄 논 너머로 지는 해가 아름다워 아저씨와 함께 한장


그나저나 아저씨는 어떻게 지내시나요? 오늘 중학생들에게 “여행 그 속에서”라는 주제로 제가 여행(유학을 포함해서)을 하면서 배운 이야기를 나눴어요. 필리핀 이야기하면서 어김없이 아저씨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학교 다니면서 아저씨랑 많은 논쟁들을 했었잖아요. 전 우리가 그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생물학에서 농학을 하는 나와 산림학에서 생태학을 하는 아저씨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아저씨가 날 배려하는 마음이 커서 그랬구나 싶어요. 그 때는 내 속에 있는 말을 표현하는 것조차 어려워 수업 없는 날이면 기숙사 복도 한쪽에 앉아 소리 내어 영어책을 읽었었죠. “너 책 읽는 소리가 저 밖에서부터 들려.”하며 웃으면서 내게 말을 건네는 아저씨를 보며 “난 영어 못해서 이렇게 해야 돼요. 많이 시끄러워요?” 하니 “아니야. 근데, 뭐가 어려운건데? 나 영어 잘 하는데 도와줄까?” 하하! 그 때는 아저씨가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아저씨의 독일에서 연수생일 때 이야기 들으며 아저씨가 내 상황을 많이 공감하구 있구나! 싶어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었죠. 하하하 말이 딴 곳으로 흘렀네요. 오늘 중학생 친구들에는 아저씨와 논쟁했던 환경과 농업에 관한 이야기했어요. 왜 제가 필리핀의 고속도로가 2차선 이어서 필리핀에서는 농업생산물의 유통을 더디게 하니 정부가 도로확장에 힘을 써야 한다고 제가 열변을 토하니 아저씨가 그러셨잖아요. “생태농업을 하겠다고 하는 네가 어떻게 그런 결론을 내니? 도로가 확장되면 생태계파괴는 물 보듯 뻔한데.” 그 때는 납득할 수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제가 뭘 몰랐던 것 같아요. 그래도 지금은 기후변화시대의 안전한 먹을거리를 논하면서 지역먹을거리가 대안이라 이야기해요.

  아저씨!

졸업식을 마치고, 함께 공부했던 언니의 고향인 루손섬의 잠발레스 해변에서 아이들과 함께 마지막 날을 보냈다

건강하게 지내고 계세요. 지금 당장은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움직이기 어렵지만, 신랑과 함께 아저씨에게 인사하러 갈게요. 아저씨가 즐겨 말씀 하시던 집 앞 백사장도 거닐고 바다수영도 하고 아저씨 동네 특산품 멸치튀김도 실컷 먹으면서 그동안 못 다한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17살 나이차이가 있었지만, 나를 친구처럼, 동료처럼 또 딸처럼 따뜻하게 해 준 아저씨가 있었기에 제 유학생활은 즐거웠어요. 그리고 그때 함께 했던 논쟁으로 세상을 보는 눈에 대해 많이 고민하며 살게 되어 지금의 신랑을 만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꾸야 크리스!

참 고마워요.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GOD BLESS YOU!

    한국에서 희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