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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석&희정/일상

꼬마농부 인태네 이야기(책으로 만나는 심리상담 니)

 

 


니(2013 여름호)

저자
편집부 지음
출판사
한국알트루사 | 2013-06-01 출간
카테고리
잡지
책소개
『니』는 (사)한국알트루사에서 펴내는, 책으로 만나는 심리상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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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는 책으로 만나는 심리상담책이다. 결혼 초 너무 복잡스러운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 찾아갔던 알투르사에서 문은희 선생님과 상담치료를 받은 후 읽게 된 책이다. 벌써 한 참 지나긴 했지만, 우리이야기가 2013년 봄호 "우리는 왜 재미있게 살지못할까?"에 실렸다. 니에 공유했던 우리이야기. 작년 겨울 우리가족이야기이다.

 

 

 

서둘러야겠다. 이제 한두 시간 후에 택배아저씨가 오실 텐데 아직 배송할 생강을 다 포장하지 못했다. 게다가 늦가을이라 그런지 너무 빨리 밖이 어두워진다. 나무보일러에 넣을 나무도 날라야하고, 생강을 구매해주신 분들께 선물로 드릴 고추도 포장해야 하는데 큰일이다. 그렇다고 아직 두 돌도 안 된 인태를 모른 척 할 수도 또 누구에게 맡아 달라 부탁할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일의 순서를 정해야겠다. 우선 어두우면 못할 일을 먼저 해야 하니 나무부터 날라야겠다. 마음은 급하지만 인태의 걷는 속도에 맞춰 수레를 끌고 나무 쌓아놓은 곳으로 간다. 인태는 내가 하는 일은 다 따라하고 싶어 한다. “인태야 손은 치워야해. 엄마가 이제 나무를 수레에 넣을 거야. 네가 손을 수레에 넣고 있으면 다쳐.” “이체제대오체야료.” 하늘을 가리키며 인태가 내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한다. “뭐?” 이번에는 손을 반짝반짝하면서 내게 말을 한다. 잠시 나무 나르는 일을 중단하고 하늘을 보니 하늘에 송골송골 별들이 보인다. 하하하. 이렇게 별을 보는구나.

 

서울토박이인 우리 가족의 시골생활은 만만치 않다. 맘 편히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부탁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는 것이 적으니 먹을 수 있는 나물들도 내게는 다 처치곤란한 풀일 뿐이다. 풀들을 그냥두면 그 사이로 다니는 뱀을 볼 수 없기 때문에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풀들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300평 남짓한 밭에 농사를 짓는데도 손이 무척 많이 간다. 빡빡한 서울 삶이 싫어 자연 속에서 여유롭게 아이와 살겠다던 우리 부부의 바람과는 다르게 하루하루 전쟁하듯 정신없이 살고 있다. 또 생강을 제외한 나머지 작물은 다 잘 자라서 판매를 했는데도 난방비와 교통비 어느 것도 충당할 비용이 안 나온다. 어쩔 수 없이 신랑은 지난달부터 집짓는 아르바이트를 다니기 시작했다. 한 달에 이틀 쉬기 때문에 나와 인태 둘이서 농사를 지어야 한다.

 

생강판매는 소량주문이 많다보니 당일 수확해서 다듬고 포장해서 판매하기까지 한다. 이것만으로도 꼬박 하루가 걸린다. 일이 많아지니 당연히 인태도 밭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오전에는 심어놓은 양배추와 배추 안에서 자라는 벌레도 잡아야하니까 말이다. 내가 밭에서 일을 할 때면 인태는 옆에서 풀을 뽑기도 하고 내가 잡아놓은 벌레를 닭들에게 갖다 주기도 한다. 뭐가 먹고 싶으면 오이를 따거나 당근을 뽑아 “엄마, 씨셔여”하며 마당 수돗가로 가서 닦아 먹는다.

 

어떤 날은 내가 배추 안에 있는 벌레를 잡고 있는데 인태가 또 나를 치면서 하늘을 가리킨다. 오랜만에 하늘을 보니 구름이 몽글몽글 예쁘게 떠있다. 인태 덕분에 이렇게 가끔 하늘도 본다. 어느 날은 배추벌레 잡는 데 열중하다가 뭔가 뭉글한 게 느껴져 땅을 보니 뱀이 죽어 있다. 순간 너무 놀라서 “아, 아! 으악!” 고래고래 소리 지르다 인태와 눈이 마주쳤다. 어찌나 창피하던지 “하하하” 웃어버렸다. 그런 나를 보고 인태도 “하하하” 웃는다. 그날은 죽은 뱀을 사이에 두고 인태랑 나랑 한참을 “하하하” 웃었다.

생강 수확을 마칠 때쯤 밭에 누워있는 인태를 발견했다. 보통은 엎드려서 흙 놀이를 하는데 평소와 다른 자세로 있는 인태가 이상해서 가까이 가보았다. “인태야” 하고 흔들어보니 요 녀석 잠에 취해 내 소리가 안 들리나보다. 잠든 인태의 모습이 참 편해보였다. 한편으로는 매일 종일 엄마 옆에서 자기 나름 적응하는 어린 아들이 안쓰럽기도 했다. 뭐 이것도 시골생활의 한 부분이겠지.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으니….

 

시골 살이 2년차. 우리는 생각한 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 일이 대부분이다. 매일 입고 빨기 편한 ‘몸빼’ 바지에 작업복, 그리고 장화만 신다보니 신발장 구석에 먼지로 뒤덮여있는 예쁜 구두를 보며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도 든다. 그토록 동경했던 시골생활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세상일은 내 맘대로 안 되는 거란 걸. 여유는 외부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서 만들어가는 것이란 걸. 이런 걸 알기 시작하니 종일 농사일로 고단하지만 아들과 함께 마주보는 것도, 하늘에 별을 보는 것도 행복했다. 늦은 시간 고된 육체노동으로 집에 오면 잠시 우리 모자가 제잘 대며 남편과 하루를 공유하는 시간도 귀하고 말이다. 또 가끔은 밭에서 일하는 내 눈을 피해 숲으로 도망가는 아들을 몰래 따라가다 같이 밤과 도토리를 줍는 일탈도 즐기게 된다.

 

올해도 봄이 오면 작년과 비슷하게 많은 노동을 할 것이다. 특별히 올해부터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직장을 잡을 남편과 모험심이 가득한 두 살 아들 인태와 어떻게 농사지으며 살지 막막하다. 뭐 그래도 그 나름 재미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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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_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다가 몇 해 전 장수 마을로 귀농해 농사에 열심이다. 남편 봉석씨, 아들 인태와 함깨 재배한 양파, 생강 등 유기농산물을 이웃들과 나눈다. 느리지만 인간다운 삶을 살고있다. similre.tistory. 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