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2일. 수능일
오늘은 수능시험이 있는 날! 버스를 타고 동네 xx여고를 지나치는데, 많은 응원하는 학생들로 붐비고 있었다. 나도 저런 곳을 지나쳐 시험을 치루던 날이 있었지... 하며 지나간다.
오늘은 지리산 실상사에 가서 도법스님을 만나는 날이다. 다른 환경단체 활동가들과 가기로 했는데, 마음이 왔다갔다한다.
"아~~~으....." 버스안에서 한참을 자다가 일어났는데, 창밖으로 구비구비 산들이 보인다. 어느새 내 입에서는 "와~" 감탄소리와 함께 그래~이래서 떠나는거야~하는 자족이 생긴다.
실상사의 고요가 나를 찾아왔다 |
운동은 어려워야 맛이다!
도법스님이 오셨다. 가까이에서는 처음 뵙는 것 같다. 작은 체구이지만, 아주 건강하고 환한 인사을 하고계셨다. 빙 둘러앉아있는 우리들에게 말문을 여신다
"힘들어야 하는게 운동 아닙니까? 문제없고, 어려움이 없으면 운동이 필요할까? 운동이 어렵다! 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문제다. 가장 가깝게 우리가 알고있는 민주화 운동도 그렇고 모두 모순, 혼란, 비극 이런 상황이 휘몰아치는 그때였고. 만일 문제가 없다면 좋을까? 불의없는 정의가 존재할 수 있을까? 불의와 정의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기에 우리 머리에 있는 정의와 불의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씨앗이 썪는 아품없이 새싹이 돋아나지 않듯 꽃잎이 떨어지는 아픔없이 열매맺지 않듯."
머리를 다다다다다다다 얻어맞고있는 듯 하다. 한마디 한마디가 정확하게 내 머리를 두들기고있다. 도법스님은 말씀을 이으시면서 실제적으로 환경문제를 야기하는 것에 구조적인 문제는 2차적인 것이고 결국은 인간자신. 인간의 철학이 잘못된 것이라 하신다. 그러면서 또 한번 침을 놓으셨다.
"인간의 무지와 착각으로 모든 문제가 있는데, 이것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 다른곳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게 잘못됐다. 운동가의 가장 큰 문제는 MB정부도, 자본주의도.제국주의도 아닌 인생 공부를 하지 않음에 있다. 다음에 해도 되는 공부를 먼저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문제다. 운동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상처받지 않을 자신을 단단하게 해야한다. 내가 상처받지 않을 주체적인 힘!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실망, 좌절할 이유가 없다. 이렇게 되는 것은 내면의 힘이 없기 때문이다. 상처를 받고 안받고는 객관적 사실에 문제가 아닌 주체적인 힘의 유무이다. 스스로 상처받지 않게, 분노, 짜증, 원망, 한탄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는 주체적인 힘!이 운동가의 첫 번째 조건이다. 그럼 지치거나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다!"
막힌 혈을 뚫는 것처럼 갑자기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았다. 이제서야 명의를 만난 것 처럼 나의 아픈곳을 정확히 진단하고 치료받는 기분이었다. 내가 힘든것은 나의 나약함인것이지, 주변의 강력한 무언가의 방해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참...
주체적인 힘은 그럼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비움. 채움.
버리면 생긴다다고 하신다. 다만, 렇게 하지 않으려고 하니 힘들다면서 간디의 물레이야기를 하셨다. 간디는 영국의 옷을 사 입으려고 몇달치의 월급을 모아야 했던 당시 인도인들을 보며 인도 전통 수공업으로 자신의 옷을 만들어 입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물레젓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즉, 강력한 싸움은 빠져나오는 것으로 자본주의와 싸우로 있다면 실제 자본주의 가치와 삶의 방식을 버려야 싸움에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대응과 대안을 함께하며 삶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일이 잘 되고 안되고에 대해 연연해말고 자기 확신대로 움직이면서 쓰러지지 않을 주체적인 힘이 운동가에게 중요하다 한번 더 강조하신다.
그럼 주체적 힘이 만들어 지면 되는것인가!?
스님은 또 한번 물으셨다.
"우리의 비판, 저항, 대응하는 대상들이 보수, 기득권 입니까? 그들이 모두 우리의 적입니까?"
스님은 어떤 사람에게도 열고 들어갈 문이 있다고 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싸울 때 상대를 열 수 있는 문을 보기에 앞서 바로 부수고 들어가려해 문제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나의 약점은 가리고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는 것이다.
현대통령 취임 전후의 민심의 움직임을 보면 현 대통령에게 표를 준 사람도 있고, 또 작년 한해 광화문에서 촛불을 든 사람들도 있다. 그 들 모두 민심인 것이다. 그런데, 자꾸만 한쪽만 민심으로 보기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실제 운동의 힘은 도덕성- 주최, 자립, 객관, 공평, 정직, 성실-이기에 누가 객관적이고 공평한지 봐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싸우고 있는 상대를 보통 상식으로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우리의 이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한번 더 우리에게 물어보셧다. "만일 우리가 어느 대상과 싸울 때 바로 그의 문을
부스고 들어가는 방법이 아니라 문을 찾아 열어서 들어가는 방법이 찾는데 우리의 에너지와 노력을 쏟을 수 없을까?마음이 숙연해진다. 스님과의 대화를 마치고 조용한 실상사를 거느리며, 지리산의 자연을 다시 바라보며 여기까지 달려온 그 시간들을 조금씩 되돌아본다. 그리고...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