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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석&희정/임신

임산부도 노약자석에 맘편히 앉고싶다!

바보같이 오늘도 말을 못했다.
"저 임산부예요. 배가 안나왔을뿐 지금이 가장 안정을 취해야 하는 초기 임산부라구요. 그래서 노약자석에 앉아있었던거라구요."

앞쪽에 앉은 노인들이 나 들으라고 인상쓰면서 이야기를 한다.
"저런 싸가지 같으니라고, 사람없을때 앉는건 누가 뭐라그래? 노인내들서있는데 버젓이 앉아있어. 저런싸가지 꼴도보기싫어!"
들릴듯 말듯한 이 소리가 귀에 거슬렸는데, 내릴때가 되어 임산부인데 너무 힘들어서 앉아있었던 거라고 말하지 못하고 나와버렸다. 원래 기분나쁜 상태에서는 말을 잘 안해서 그런것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앞에서는 한마디도 못하고 뒤에서 욕이나 하는 사람들말은 무시해도 상관없다는 생각도 있었는데......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기분이 나쁘다.

서있는 것이 괴로운것이 아니라 사람많은 곳이 괴롭다.

모든 임산부가 다 그런것은 아니겠지만, 임신한 뒤 내 코는 마치 냄새 흡입기가 된 것 같다.
담배, 술, 화장품, 향수, 세탁소, 미용실 냄새들이 모두 내 코속으로 흡입되는 것 같다. 잠시 그런것은 그냥 참을 수 있겠지만, 몸상태가 별로인 날은 정말 토할것 같다. 심지어 방금 담배피고 온 사람이 가까이와도 그 냄새에 머리아프고, 신랑이 술마시고 뽀뽀하려고 해도 속이 울렁거려 죽을것 같다.
그런데 사람많은 지하철은 어떻겠는가? 밀폐된 공간에 온갖 냄새들이 섞여서 머리가 지끈지끈 속이 계속 울렁거린다. 그래서 입덧하던 시기에는 직장이고 뭐고 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만 있었다. 다행이도 내가 다니는 일터에서는 혼잡시간을 피해 출퇴근 할 수 있도록 10시 출근~5시 퇴근으로 조절을 해 주었다. 하지만, 일하는 시간이 단축된다고 일하는 양이 단축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가끔 뭔가를 하다보면 늦게되고, 게다가 출퇴근거리가 1시간이 넘는데...혼잡시간을 늘 피할수는 없다. 하지만, 아직 배가 나오지 않았는데 누가 나를 임산부로 알겠는가!!!!!!!!!! 만일 사람들이 없는 한가한 시간이라면 나도 지하철에서 서서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은 시간에는 정말 내가 지옥철에 타있는 것과 다를바가 없는 것이다. 오늘도 그래서 내 앞에 서 계신 노인들을 보고도 앉아있었다.

궁금하면 물어보시라. 차라리 앞에서 뭐라고 해라

한번은 내 앞에 어르신이 섰는데, 책을 보다가 고개를 들어 마주보게 되니 그분이 내게 물었다.
"애가졌어?
"네"
"그럼 그냥 앉아~"

그리고 다른자리로 옮기시는 그 할머니가 얼마나 고맙던지. ㅠ.ㅠ
그나마 할머니 할아버지가 일반석에 서 있으면 일어서는 젊은이들도 있지만, 내가 서 있으면 아무도 일어서지 않는다. 아무도 모를테니. 노약자석에 앉아있는 배나오지 않은 잚은여성을 보고 불편한 마음이 드는 분들이 있으면 직접 물어봤으면 좋겠다. 애 가졌냐고.
물론, 나도 오늘처럼 알지도 못하면서 욕하는 사람들을 보면 화내는 것 대신 꼭 내가 임산부이고, 게다가 힘들어서 앉았다고 밝혀야겠다. 그리고 나도 사람들이 없는 곳이라면 서서갈 수 있겠지만, 혼잡한 상황에서는 다리가 아픈것 보다 괴로운 냄새와 사람들과 부딪쳐서 머리아프고 울렁거려 도저히 서 있을 수 없어 앉아있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