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소박하고 느려서 얻는 풍요로움

 환경오염에 대한 해법으로 소박한 삶, 느리게 사는 삶, 미니멀 라이프, 저탄소 생활 등 참 다양한 말들이 거론된다. 표현은 달라도 지향하는 바는 서로 이어진다. 탄소 배출량이 적은 삶은 단순해야 가능하고, 단순하려면 소박할 수밖에 없다. 소박은 적게 가진다는 말이며, 그런 삶은 당연히 느리다.

 현재 우리의 삶은 어떤가? 빠르다. 사람보다 빠른 기계를 사용하기 때문에 뭔가를 얻기 위해 들여야 하는 노동의 양이 줄어들긴 했다. 그런데 그 기계를 돌리려면 석유라는 원료가 필요하다. 석유를 광범위한 지역에서 채굴하면서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과 동물 그리고 식물은 살 곳을 잃었다. 또 기계의 속도에 익숙해져 버린 사람들은 삶의 많은 부분에서 속도경쟁을 부추기기도 한다. 누군가는 집에서 버튼 하나만 클릭해서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빠르게 받는다. 반면 누군가는 그 사람에게 물건을 빨리 전달하려고 자신의 속도를 한계 없이 올리다가 결국 돌연사한다. 빠르고, 편하고, 풍요로운 삶을 모두가 함께 누릴 수는 없다.

 일주일에 한두 번, 남편이 일찍 출근하는 날이면 나는 집에서 약 3.6km 거리에 있는 학교까지 아이와 걷는다. 등굣길에 아침 안개가 가득할 때는 자연 보습을 하기로 하고, 맑은 하늘에 구름이 있는 날에는 원근감을 이용해 사진 찍기 놀이를 한다. 때때로 뱀이나 고라니를 만나기도 하고, 천변에서 놀고 있는 다양한 새들의 형태도 살펴본다. 놀다가 시간이 많이 간 날에는 같이 전력 질주하며 아이와 실컷 웃는다. 차로 가면 10분 거리인데 아이와 걸으면 50분이 걸린다. 걸어서 다니는 것은 차보다 느리고 힘들다.   반면, 먼 곳에서 사 온 석유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고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다. (그 폭은 작지만) 속도 조절이 가능하고, 또 건강과 함께 추억을 얻는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세상에 음과 양이 있듯, 우리 삶의 선택지에는 언제나 장단이 함께 한다. 좋은 점만 누리는 선택이란 건 없을 것이다. 다만, 내가 좀 느려져서 함께 누릴 수 있는 것이 많아진다면 좀 느리게 사는 것이 더 풍요롭지 않을까

이 글은 사단법인 한국알트루사 소식지 2021년 11월호[243호] 기후응급시대 꼭지에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