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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석&희정/생각나누기

나는 그들에게 어떤 이웃일까?

  지난해 가을에 있었던 일이다. 간밤에 고라니가 배추밭을 다녀갔다. 고라니 망에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닌데 지난 보름간 자리를 잘 잡고 있던 배추 모종이 모두 사라졌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문제의 원인을 찾으려 밭 주변을 살피는데, 무수히 많은 고라니 발자국이 눈에 띈다. 그 발자국 사이로 열려있는 망이 보인다. 흙으로 잘 묻었어야 했는데, 내 잘못이다. 고라니는 아래쪽으로 열려있는 곳을 찾아 들어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내가 일처리를 꼼꼼하게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사라진 배추를 보자마자 고라니만 탓하고 원망했다. 내가 부끄러웠다.

  이번 가을 농사를 준비하면서 절대 실패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이 다짐은 지난 몇 해 동안 가을 농사를 망쳤기에 세운 것이다. 농사를 망치고 여러 핑계와 변명 뒤에 숨었다. 그러다가 결국 작년에는 잘 여문 배추가 부족해 다른 농가에서 사 김장하는 상황이 생겼다. 그래서 가을 농사가 잘 됐던 때의 방식으로 퇴비를 넣고 비닐멀칭도 했다. 비닐 사이로 보이는 것은 배추 모종, 무 새싹뿐이다. 고라니는 먹이가 얼마나 잘 보였을까? ‘누군가 만찬을 차려놓았네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심지어 들어갈 수 있는 문도 열려있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사실, 고라니는 우리 밭에 자주 찾아오는 야생동물이다. 심은 작물보다 풀들이 더 많았던 우리 밭에서 까마중이나 쇠비름을 먹고 갔다. 그때는 그들 때문에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들이 우리 밭에서 뭘 하다 갔을지 상상하며 즐거워했다. 생각과 처지가 바뀌면서 그들을 대하는 내 마음이 달라진 것이다. 고라니 망을 수선한 이후 더는 고라니가 밭에 들어오지 않았다. 더는 그들이 밭에 오는 걸 허락하지 않는 것을 그들도 알았을까? 다행히 배추와 무는 잘 자라 김장하고 겨우내 먹을 만큼 수확했다.

  심어놓은 고추가 잘 자라지 않는 두둑을 발견했다. 뭐가 문제일까 찾기 위해 모종 주변을 살피니 구멍이 하나 보인다. 이 구멍이 뭔지 알아내기 위해 구멍 주변을 파 보았다. 구멍은 터널의 입구였고 터널은 두둑을 따라 길게 나 있었다. 그리고 그 터널 위 공중에 떠 있는 고추 뿌리가 보인다. 두더지가 파 놓은 터널이다. 두더지에게 화가 났다. ‘왜 내 밭에 와서 이런 행패를 부리는 거야?’하면서 말이다. 다른 농부들에게 두더지피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물으며 다시는 내 밭에 오지 못하도록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글 하나를 읽게 되었다. 생태계 연결고리다. 지렁이가 많아지면 두더지가 먹을 것을 찾아오고, 두더지가 있으면 또 뱀이 와서 배를 채운다는 것이다. 자연현상이다. 다양한 생명이 살 수 있는 밭을 꿈꾸던 내게 꿈같은 상황이 발생한 것인데, 고추재배에 빠져 전체를 못 봤다. 이상이 현실이 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일을 왜 나는 준비하지 않았을까? 더불어 언제부터 내가 농사짓는 땅이 내 것이었을까? 왜 이 땅을 내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일까? 부끄러웠다.

  하지만 고추 농사지을 땅이 이곳밖에 없기에 고민 끝에 두더지 터널을 무너뜨리는 방법을 선택했다. 두더지들과 협상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들의 언어를 모르니 그들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내 입장을 그들에게 표현해야 했다. 내가 무너뜨리면 그들은 다시 터널을 만들고, 나는 또 무너뜨렸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두더지 구멍은 보이는데 작물은 피해를 보지 않는 날을 맞이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해 보니 두더지 터널이 작물 뿌리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위치에 있었다. 더는 그들의 터널을 무너뜨리지 않아도 됐다. 나만의 생각일 수 있지만, 우리가 함께 공존하기 위한 적정거리를 찾았다. 기쁘고 감사했다.

  처음 길에서 뱀을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 그도 나도 당황해 얼음 상태로 있었다. 한참이 지나 그가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순간 호기심이 발동해 그의 뒤를 따랐다. 내가 움직이자 그는 다시 멈췄고, 나도 따라 멈췄다. 또 그렇게 한참이 지나 그는 그 전보다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도 빠른 걸음으로 따라갔다. 그러다가 그가 풀들 사이로 사라지는 것을 봤다. 그때 생각했다. 내가 그를 무서워했던 것처럼 그도 나를 무서워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왜 그를 무서워하는지 생각했다. 나는 그를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수많은 불확실한 정보를 갖고 있다. 그를 제대로 알아보자 다짐했다. 물론 그에 대한 정보는 사람들의 관찰에 의한 것이기에 정확하게 그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에 대한 편견은 지울 수 있었다. 덕분에 이제 뱀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다만 그를 놀라게 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밭에 갈 때는 막대기를 들고 다니며 내가 그곳에 있음을 그에게 알린다. 그도 내가 밭에 가면 내가 일하는 동안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그와 나는 같은 공간을 다른 시간에 이용하며 공존하게 되었다.

  우리 집에서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가는 길에는 천을 따라 걷는 구간이 있다. 우리는 그곳을 차를 타고 지나기도 하고 걸어서 지나기도 한다. 그리고 그곳에 사는 다양한 새들과 동물을 본다. 추운 겨울에도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오리부터 우리가 가까이 가면 긴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왜가리와 백로. 그리고 아주 가끔 수달을 봤다. 며칠 전에는 덤불 속에 있던 수십 마리의 붉은머리오목눈이도 만났다. 아들과 한참 동안 그곳에 머무르며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뭐라고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제법 흥겨운 음악 소리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아마도 내가 사는 동네에는 사람이 아닌 다른 생명체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런데 난 그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공격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런데 그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지구는 다양한 생명의 공유거주지임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인간을 제외한 나머지를 자원이라 부르며 인간을 위한 물건쯤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인간들은 같은 인간들조차 자신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니 인간과 다른 종을 도구화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가? 너무 쉽게 그들이 살던 나무나 덤불을 없애고, 산불과 같은 대형재난이 발생했을 때도 인간을 기준으로 피해 규모를 정한다. 그들은 갑작스럽게 거주지와 생명을 잃었는데 말이다.

  15분마다 한 종이 사라진다는 기사를 읽었다. 인간이 다른 생명과 좋은 이웃이 될 수는 없을까? 어떻게 사는 게 그들과 함께 사는 건지 고민해본다. 다소 막연하지만, 이들과 좋은 이웃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목표도 세워본다. 물론 현실을 생각할 때 갈 길이 멀다. 그래도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과 좋은 이웃이 되고 싶은 나의 목표는 바꾸지 않을 것이다.

김희정 알트루사에서 기후위기 강사로 자원활동을 했다. 모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공부하는 즐거움을 맛봤다. 오랫동안 미뤄왔던 자신을 돌보는 공부를 하며 매일 새로운 성장을 하고 있다. skyhj@naver.com

이 글은 사단법인 한국알트루사 책으로 만나는 심리상담 계간지 니 2022년 여름호[47호]에 실린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