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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머컬쳐디자인/들풀이야기

개망초

 

 

 

 

 

 

"저 꽃의 이름이 뭔지 아니?"
"계란꽃이요."

유치원 아이들에게 꽃 이름을 물으면 다들 '계란꽃'이라고 대답한다. 계란처럼 생겼다고 말이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개망초를 두고 하는 말이다. 도심에서 버려진 나대지나 공터에 가면 어김없이 만날 수 있는 게 바로 '개망초'다.
'개'자로 시작되는 말은 어감이 좋지 못하다. 예쁜 개나리도 예외는 아니다.

식물 가운데도 개망초, 개비름, 개망초처럼 본이름 앞에 '개'자가 붙어서 뭔가 '개 같은' 이미지를 주는 것들이 있다. 개가 들으면 무척 섭섭할 일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1910년대 일제치하에 들어가면서 유독 여기저기 많이도 돋아났다고 해서 '망할 망()' 자를 넣어서 망할 놈의 '개망초'가 되었다.

개망초는 또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미국으로 끌려와 오랫동안 비참한 노예생활을 했던 흑인들의 꽃으로도 유명하다. 고향을 잊지 못하는 아프리카 노예들의 기구한 운명을 상징하기도 한다. 6월과 7월, 어느 길가 어느 곳이든 활짝 피어 있는 개망초의 한살이처럼 인간의 생과 사도 일상에 불과하다.

단지 '나'를 중심에 놓고 '얼마나 가까운' 사람이 태어났고 죽었느냐에 따라 기쁨과 슬픔의 무게가 달라질 뿐이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죽을 것 같았던 슬픔도 잊히게 마련이다.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죽으니까. '나'의 생명이 끝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죽음을 접하게 되는지 일상의 '부고'는 잠시 충격을 줄 뿐, 우리는 다시 생활에 익숙해진다.

노인()들이 자신이 죽어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수긍하는 것처럼. 개망초는 꽃집에서나 살 수 있는 화려한 꽃들이 무색할 만큼 아름답다. 그래서 나는 개망초가 필 즈음이면 개망초 꽃다발을 만들어 주변에 사람들에게 선물한다. 물론 들꽃만으로 꽃다발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6월부터는 감자꽃을 꺾어서 꽃다발을 만들기도 한다. 감자꽃의 아름다움은 개망초와 조금 다르다. 중년의 귀부인처럼 자태가 우아하다. 들이나 밭에서 나는 꽃처럼 촌스러우며 소박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꽃이 어디 또 있을까? 개망초는 열매를 맺으면 조그만 갓털이 붙어 바람에 날리어 번식을 한다.

한 그루에 맺는 열매의 개수가 많아 번식력이 엄청나다. 그래서 농부들은 개망초를 성가신 풀 중의 하나로 꼽는다. 밭에서 나는 개망초를 씨앗이 익기 전에 낫으로 베어내 밭에 두면 번식을 억제할 수 있다. 잡초를 잘 관리하려면 씨로 번식되는 잡초의 경우 씨를 맺기 전에 베어주어야 한다. 그러면 잡초의 번성을 막을 수 있다. 농사를 처음 지을 때, 시기를 놓쳐 잡초를 베어주지 못했다. 지나가던 농부들은 "쯧쯧, 저렇게 잡초에 씨가 맺도록 베어주지 않고 뭐하나?"며 혀를 차곤 했다. 감자밭이 끝나면 한꺼번에 베어줘야지 했던 게 씨를 맺고 씨들이 날려 잘 번식하도록 도와준 셈이다.

그 뒤부터는 두 번을 베어준다. 한 번은 씨가 맺기 전에 베어서 밭에 멀칭을 해놓고, 또 한 번은 밭을 만들기 전에 자란 풀들을 베어주어 밭 위에 또 멀칭을 한다. 한 여름 두 번을 베어도 잡초는 자란다. 해마다 쉼 없이 돋아난다. 다 베어내도 또 자란다. 다 베지 못하면 여름과 가을에 전초를 채취해 그대로 사용하거나, 햇볕에 말려 약재로 사용하면 좋다. 한방에서는 열을 내리고 독을 치료하며 소화를 돕고 설사를 멎게 하는 데 사용한다. 한방에서는 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하여 '일년붕'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먹자]

4월이 되면 들길이나 산길, 밭둑에는 새순들이 즐비하게 나 있다. 손으로 잎가지를 뚝 따서 살짝 데쳐 소금만 넣어서 먹어도 색다른 향과 맛을 즐길 수 있다. 생리활성에 무조건 도움이 되므로 생즙으로 내어 먹어도 좋다. 자체의 풍미를 즐기려면 소금만 넣어서 먹고, 보다 부드럽게 먹고 싶으면 참기름에 깨를 살짝 무쳐 먹으면 된다. 초고추장에 무쳐서 먹으면 초고추장의 맛이 더해져 또 다른 맛을 낸다. 잎을 따서 나물로 먹는 방법은 다양하다. 잎이 약간 세다고 생각하면 된장국으로 끓여 먹는다. 고깃국에 넣어 먹기도 한다.

잎을 튀겨 먹기도 하지만 나중에 꽃이 피면 꽃과 함께 튀겨 먹는 게 진짜 별미다. 좀 센 잎은 말려서 겨울잎차로 마셔도 좋다. 6~7월에 이르러 꽃이 피면 꽃을 따서 채반에 놓아 그늘에 말린다.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 며칠동안 뒤적거리며 말린다. 말린꽃을 유리병에 넣어 '세포가 죽어 가는가 보다 생각될 때' 뜨거운 물을 투명한 유리잔에 넣어 2~3분 우려내어 마신다. 국화과의 꽃은 꽃차로도 만들 수 있으니, 개망초의 꽃을 음지에 말려 꽃차를 만들어 음미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늘에 말린꽃으로 꽃차를 내어 마시면 '들꽃 향기란 게 이런 거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출처: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약이 되는 잡초음식), 2011.12.16, 도서출판 들녘

풀밭마녀 소란팁 : 위가 더부륵한 사람에게 좋다. 패스토, 나물국, 피클 모두 만들어 먹을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