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봉석&희정/일상

아빠를 위한 점심

아마도 제가 20살때 였을거예요.

엄마가 며칠 동안 어디 먼 곳에 가시고, 제가 집에 있었을 때.

아침에 출근하시는 아빠에게 점심에 김밥도시락을 해 드리겠다고 약속을 했었죠.

그런데...제가 뭔가를 하다가 시간을 놓쳤습니다. 식사하시러 집에 오신 아빠를 보고 점심시간이 꽤 지난 것을 알았습니다.

"아차~"했었죠. 많이 시장하시겠다 생각하니 아무것도 준비해 놓지 못한 제가 너무도 원망스럽더군요. 그저 아빠에게 사실대로 이야기 하는 수밖에...ㅠ.ㅠ

"아빠...깜빡 했어요."

"그래? 괜찮어. 라면먹으면 돼. 나 간다. 너 밥 챙겨먹어."

그 때는 아빠의 점심시간은 너무 짧았고, 근처 식당도 변변치않아 집에서 밥을 안해놓으면 라면밖에 못드셨습니다.

그 이후...저는 타지에서 대학을 다니고, 타국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또 타국에서 살다 왔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정신없이 일하다 결혼하고, 아이낳고 멀리 이사와서 살면서 친정부모님 만나는 날이 많이 줄었습니다. 여전히 그 때 약속한 점심도시락을 해 드리지 못한 채...

그런데 제게 기회가 생겼습니다.

7월 휴가를 마지막으로 엄마는 일을 그만두시면서, 아빠보다 휴가를 더 길게 보내시기로 한 거죠. 즉, 엄마는 휴가가 엄마아빠보다 늦게 잡힌 동생가족과 해남에 같이 가시고, 아빠는 저희 가족과 하루를 더 보내시고 서울로 가시기로 했거든요. 모두가 떠나고 아빠와 우리가족만 남으니 아빠는 갑자기 외식하자 하시고, 영화도 보여주시고 또 간식도 사 주셨습니다. 며칠 동안 정신없이 밥 한 제가 안쓰러웠던 거죠. 히히 뭐처럼 푹 쉬고 다음 날 떠나는 아빠를 위해 저는 점심으로 베트남쌈을 준비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서울가셔서 혼자 드시게 될 저녁까지 넉넉하게...

드디어 아빠에게 해 드리기로 했던 점심도시락을 18년만에 해 드린거죠.

야단보다는 기다림으로 저를 키워주신 아빠를 생각하면 늘 눈물나게 감사하답니다. 작지건데도 서울 도착하셨다는 전화와 함께 아빠는 "고맙다. 다 고맙다."하시더군요. 딸바보 우리아빠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우리곁에 계시기를 기도합니다.

 아침에 아빠가 뭔가 쓱싹쓱싹 하시더니 자투리 나무로 우리집 문고리와 받침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엄마가 부탁하신 뽕잎과 나뭇가지도 다 준비해 두시고....

그렇게 아빠는 혼자 서울로 가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