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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카5

다시 설레임으로... 3.6.9. 아이가 태어나서 급성장하는 시기 장기 외국생활을 할 때 오게되는 어려운 시기 그리고... 나의 결혼생활에 찾아온 위기. 문득 열어본 오래된 사진속에서 신랑과 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때만해도 우리가 결혼할 꺼란 생각은 전혀 안했었죠. 제게 그는 그저 성실하고 착한 동생이었고 사물놀이 공연을 인도하는 리더였고 내 일년 해외봉사단 선배였죠. 봉석씨와 제가 함께 한 공연이네요. 자리도...바로 옆이었네요. 일주일동안 유숙소에서 같이 공연연습하고 먹고자고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 후 봉석씨가 귀국하기 전 설장고를 배워보고싶다고 다시 만났었지만...너무 어려워 포기했었죠. 많이 흔들렸지만...공연끝나고 둘이찍은사진도 있었네요~ ㅋㅋ 있는지도 몰랐네요. 간혹 스리랑카이야기를 나누다 봉석씨 기억에 있는 .. 2012. 8. 6.
가슴 한켠이 서늘하게 외로운 날 올라갔던 아담스피크 - 스리랑카 스리랑카에 살때 한해에 새해 다짐만 3번씩 했습니다. 1월1일 새해 첫날 우리나라 구정 그리고 4월 스리랑카 설날. 계획했던 것을 지키지 못하면 다시 수정할 수 있어 좋았었죠. 2007년 초 스리랑카에 살면서 저한테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습니다. 마음을 가장많이 나눴던 같은 팀의 언니의 조기귀국 가공센터 시공업체 사장의 불성실함 다가오는 프로젝트 마감시간 열병, 혈소판부족, 수혈, 위장장애. 먹기만 하면 토하고, 너무 배고파서 서글펐던 그 때.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마음을 의지할 수 없어 외롭고 외로웠었죠. 그래도 임기는 마쳐야했기에 다른 팀원들을 격려해야하는 팀장의 위치에 있었기에 죽을힘을 다해 버티기로 했었죠. 그래서 스리랑카 사람들의 수행의 장소인 아담스피크에 가기로 했습니다. 버스타고 가는길. 옆에.. 2012. 8. 5.
댕구열병 그 후 5년... 2007년 팀 프로젝트 마무리 단계였을겁니다. 가공센터 건축담당이었던 저는 건축회사 사장을 상대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가급적 마을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는 건축회사를 찾다가 마을주민이 사장인 곳에서 일을하는데... 이 사람이 돈독이 오른것인지...ㅠ.ㅠ 생각만큼 잘 해주지를 않았습니다. 일을 잘 해야 돈도 지불할 수 있는것인데, 이래저래 건축이 늦어지면서 저도 많이 예민해져 있기도 했구요. 결국 코워커, 스님 그리고 사장과 회의를 하기로했는데, 그 자리에서 사장이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하기에 처음으로 책생을 치며 화를 냈습니다. "당신, 왜 말을 지어서합니까? 내가 언제 그런이야기를 했나요? 내가 언제 당신과 약속을 어긴적이 있나요? 돈을 안주긴 누가 안준다는 거예요? 당신이 지금 공사를 제날.. 2012. 2. 3.
스리랑카 마지막 휴가~ 마타라에서 비가 참 많이 옵니다. 비가 많이 올때면 전 늘 필리핀과 스리랑카가 생각납니다. 그럴때면 스리랑카에서 그적거린 노트를 열어보거나 사진을 보는데...마침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여행갔었던 마타라의 기록이 있네요~ 2007년 5월. 프로젝트를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스리랑카 남쪽에 있는 마타라에 갔었습니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동생들이었지만, 친구같았던 진욱이와 함께 창섭이가 살고있는 동네 그리고 활동하는 대학교에 방문하기도 했었죠. 사실 마을에서 활동했던 저는 대학에서 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단원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많이 들었었습니다. 학생들은 그 나라의 미래니까요. 창섭이가 활동한 마타라의 루후누대학(Ruhunu University)는 제가 필리핀에서 다녔던 대학(Central Luzon State.. 2011. 8.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