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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사/녹색연합

울진의 품에서 찾은 낭만

오늘 녹색순례를 다녀와서 같은 모둠이었던 선화씨에게 순례사진 몇장을 받았습니다. 왠지모르는 설레임에 한참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2009년 5월 녹색연합 활동가들이 하던일을 멈추고 7박 8일의 녹색순례를 위해 울진으로 떠났습니다. 일년에 한번있는 녹색연합만의 고유 행사로 벌써 12번째 순례입니다. 하지만, 저에게 이번 순례는 처음부터 설레이고 가고싶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신랑에게 "우리 순례둥이 낳을까?" 라고 말할 만큼 피하고 싶었습니다.

"아이가 생겨서 순례를 못가는 거야 아니면 순례를 가기 싫어서 아이를 갖자는 거야?" 라고 조심스럽게 물어본 신랑은 이내 불순한 내 의도를 알아차리고 저를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복지공부를 하면서 자전거로 전국순례를 다녀온 신랑에게 순례는 "꿈"이라고 했습니다. "순례는 꿈이있는 사람이 떠나는 거야. 꿈을 가진 사람이 자신을 만나고, 동료와 현장을 만나는 경의로운 순간이야."
그의 말을 듣고 저는 생각을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어찌보면 내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인데 거져 주어졌기 때문에 소중함을 미쳐 깨닫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녹색순례의 의미를 스스로 정의내려 보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지난날(2007년 7월 녹색연합 활동가가 되면서 울진숲길 조성사업 실무를 맡았었습니다.) 울진에서의 힘들었던 시간이 생각났습니다. 한국에 돌아온지 보름만에 시작한 일이었고, 그 때만해도 우리나라 말이 어색한 상황에서 울진 사투리가 왜 그렇게 안들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첩첩산중에서 지도를 잘못보고 헤메다가 멧돼지를 만나고...계속 반복해서 이상한 길로 빠지는 등. "여기서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다!"라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왕피천 생태경관보전지역

2005년도에 지정된 왕피천 생태경관보전지역은 우리나라의 마지막 오지라고 불리우는 울진의 웅장하면서도 따뜻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순례초반에는 걷기만 했습니다. 간혹 고개를 들어 한참 올라온 길에서 보이는 경관을 보기도 했지만, 하루에 20km를 넘게 걷고, 때로는 "차렷"자세로 자야만하고, 화장실도 불편하고...ㅠ.ㅠ 빨리 집에 가고싶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다시 걸은 울진 숲길 예정지는 두려움이 아닌 아련한 추억을 제게 불러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금 마치 내가 이 길에 여행자가 된 것 마냥 "이곳에는 이런게 있음 좋겠다. 여기쯤에서 도시락을 먹고..."하며 상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구간에 도착하니 순례대장이 우리를 주목시켰습니다. 

"여기는 우리가 지난번 순례답사를 와서 산양을 본 곳이기도 한 산양서식지 구간이니 산양에게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내가 산양과 같은 공간에 있다니 왠지모를 벅찬 마음이 들었습니다. 워낙 소리에 예민하다고 들었기에 침묵하며 마음으로 인사를 나눴습니다. "여기 어딘가에 있겠구나!! 잘 지내지?ㅋㅋ 언제쯤 널 만날 수 있을려나?"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고, 이리저리 넘어지면서 몸에 멍도 들면서 슬슬 짜증이 몰려왔습니다. "도대체 왜 걸어야 하는건데? 순례가 뭔데? 순례가 고행인거야? 왜 내가 고행을 해야하는 건데?" 이런 불만들이 생겼을즈음, 조별모임에서 서로들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녹색순례 5모둠

쉬는시간 인것 같네요.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은 정말 사막의 오하시스와 같습니다. 잠시 신발을 벗어 불나는 발을 시킬 수 있는, 그리고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는...


모둠에서 나눈 이야기들이 기획단에 전달이 된 것인지, 5일째 되면서는 걷기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선두에 서게 했습니다. 당연히 속도는 느려지고, 걷는것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낙동정맥을 지나는 숲길에서는 모두가 잠시 숲에 누워 명상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이내 잠이 들었다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코고는 소리에 깨어났지만, 다시금 생각과 몸이 맑아지는 듯 했습니다.

이 때부터 제 눈에 사람이 들어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내 틀에 갇혀있던 생각들이 물꼬가 트인것 처럼 자유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손을 잡아줘야 할 사람이 보였고, 날 돕기 위해 짐을 더 많이 든 사람도 보였습니다. 우리의 활동을 알리기 위해 오감을 곤두세우고 메모하는 홍보팀, 순례단 앞뒤를 오가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 그리고 얼음처럼 차가운 왕피천계곡에서 다른 활동가들을 위해 선두에 서서 징검다리를 만들어주는 활동가들이 묵묵히 힘겨워하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 보였습니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자연에 최소한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쌀든물을 받아 세제없이 설거지 하고 자연에서 얻은 반찬에 밥을 먹는 등~ 조금씩 자연에 가까워져 가는 우리들을 보았습니다.
 
3,5모둠

부상자가 있었던 우리모둠은 마지막 날 가장 쉬운 길을 걸었다. 그러면서 도감을 보며 꽃, 나무 이름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야생동물 발자국과 배설물을 확인하면서 이곳에 어느 동물이 살면서 뭘 먹었는지 살펴보았다.

생명,평화의 길을 떠나신 "오체투지단"
인도의 토지개혁운동, 핵무기 반대를 위해 떠났던 "사티쉬 쿠마르"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를 온전히 경험해야하듯, 녹색순례는 이 땅을 사랑하고 또 지키기 위해 발이 부르트고 물집이 터지고 다리가 저려오는 힘든 길을 걷는다. 고행이기도 하고, 성찰이기도 한 이 순례기간동안 이 땅의 '생명과 평화'에 대한 희망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순례 마지막날, 오는 비를 맞으며 한참을 걸으면서 비로서 순례의 걸음이, 물집이, 불편함이 "낭만"의 이름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물론, 예전 조사할 때처럼 지역에 살고계신 분들을 만나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없었기에 2009년의 울진을 충분히 돌아보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그 아쉬움이 '다음'이라는 기대를 주기에 돌아오는 발걸음에 이제 내게 주어질 일들을 활기차게 진행할 힘이 생겼다. 
전구간 참여한 5모둠

왼쪽부터 순종현, 김미영, 이선화, 나, 구대수, 서재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