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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나라살이/스리랑카이야기

랑카, 캔디 그리고 나의 러브러브한따나~

스리랑카는 한반도의 3분의 2의 크기지만, 국가가 마치 손바닥처럼 생겨서 중앙이 우뚝솓아 지대가 높고 선선하며 그 중앙을 사이로 서쪽과 동쪽이 번갈아가며 우기와 건기를 마타낸다. 즉, 동쪽이 우기면 서쪽은 건기 반대로 서쪽이 우기면 동쪽은 건기이기 때문에 바닷가 서핑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동서쪽을 반반씩 나눠서 살기도 한다. 지금은 반군소탕??을 했다해서 덜 위험하다고 하는데, 내가 살았던 2005년~2007년까지 동쪽은 여행금지지역이었다. 내가 살았던 캔디는 앞에서 말한 그 우뚝솟은 고지대에 있었다.

한따나 플레이스(Hantana Place)

스리랑카 캔디에서 어쩜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갖고있었다. 물론 임대했던 곳이기는 했지만, 사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최고의 집이었다. 영국식민생활을 오래했고 또 랑카의 마지막왕국이있던곳이 바로 내가 살던 캔디이기에 이곳은 관광지로도 유명하지만 열대국이라고 하기에는 참 좋은 날씨조건을 갖고있었다.

보통 영국사람들은 부자들이 높은곳에 살았다고 하는데, 캔디에도 그런 문화가 있었다. 그래서 높은지대에는 집도 좋고 부자들이 살고 있어 집이 깔끔하고 안전하고 또 좋은 반면에 차가 없으면 다니기 힘들만큼 대중교통은 없었다. 뭐 그만큼 대중교통을 이용할 사람도 없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내가 살았던 곳은 30년 전 밀림이었던 곳에 스리랑카 주민들이 들어가서 살던 곳이라 가난한 사람들도 많이 살아 일명 툭툭(오토바이 개조한 차량)이용요금이 저렴했다. 내가 살았던 곳은 초기 그 지역으로 들어가서 살면서 주인이 딸에게 주려고 지은 집이었는데, 그 딸이 캐나다로 이민가면서 임대를 놨던 곳이었다.

보통 나는 해가 지기 전에 들어가서 밖에 나오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등산하듯 걸어다녔는데...일과를 마치고 들어갈 때면 선선한 바람이 참 기분을 좋게했었다. 마지 요즘 성곽주변을 거닐면 느낄 수 있는 것 처럼~ 갑자기 밀려오는 그리움에 그때 그시절 우리집을 떠올리며 사진 몇장 올려본다.

내 방에서 바라본 우리집 대문! 베란다 꽃들은 우리 주인집 아주머니께서 관리하셨다. 가끔 내게 양해를 구하고 집에 들어와 물을 주시곤 했다~

나의 일상이 이루어지던 내 방~뭐...가구는 주인집에서 다 빌려준 거였다. 생각해보니 별로 산건 없구나~~ 그래도 저 멀리 박지성퍼즐맞춘 액자가 있긴하네~~ ㅋㅋㅋ

거실!! 한창 여름에는 아침에 일어나면 날파리들의 묘지가 되어있던 곳이긴 하지만... 깨끗하고 넓어 친구들과 파티하기 좋은 곳이었다

작은방! 보통 손님방이었는데...대부분 내 기타하나 달랑 있던 곳이었다. 큰소리로 기타치면서 맘껏 노래불렀었는데...나중에 알고보니 이웃집 사람들이 다 들었다고 한다...^^;;;;;

나의 텃밭...그러나 원숭이들의 침범이 너무 많아서 그냥 포기해버렸다.

내 윗집에 살던 영국친구들과 길에서 만난 외국친구들. ~ 그리고 나와 함께 2년간 랑카생활했던 우리 팀!! 모두 객지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 쉽게 마음열고 나누며 살았었다.

아주 가끔은 손님들 요청에 기타치고 노래부르기도 했었는데...^^;;;; 아는 코드가 몇개 없어서 부르는 노래는 늘 같았다. 하하하하하



참!! 러브러브 한따나는 우리집을 방문하던 동생들이 지어준 이름이다. 사람들을 좋아해서 주말이면 우리집을 다른지역에 있는 친구들이 편하게 올 수 있도록 개방했는데...나의 생활패턴 상(일찍자고 일찍일어나는...그래서 손님들만 남겨놓고 잠을 자버려 내가 자는 사이 그들 사이에 뭔가 일이 일어났었나보다~~) 우리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연인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ㅋㅋㅋ 뭐...덕분에 맛있는 것도 많이 얻어먹고 난 좋았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