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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나라살이/필리핀이야기

공 간 나 눔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별 헤는 맘으로 없는 길 가려네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설레는 마음으로 낯선 길 가려하네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 간디학교 교가-




내 나이 29. 친구들은 결혼하고 직장에서도 한 자리씩 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만나는 사람과 헤어지고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일명 인도의 눈물∙실론이라고 불리는 스리랑카로 꿈을 찾아 떠난다. 소속은 외교통상부 산하 한국국제협력단이라는 거창한 이름아래 스리랑카 지역사회개발 프로젝트를 시행하기 위해 4명의 각기 다른 분야의 사람이 팀으로 모였다.


우리 팀은 지역사회개발담당, 컴퓨터교육, 농업마케팅 그리고 내 전공인 작물재배로 구성되었고, 수출청에 배치되었다. 수출청은 스리랑카 제 2의 도시인 캔디(Kandy)에 위치하며 향신료를 주요작물로 수출 관리한다. 우리는 수출청에서 소개한 빠딴빠하(PATANPAHA)마을을 소개받아 그 마을의 소득증가를 위해 함께 일을 하기로 했다.


빠딴빠하는 캔디에서 자동차로 약 1시간 남짓 걸리는 오지로 비포장도로와 철길이 지나가는 산촌마을이다. 마을은 숲속 비탈진 곳에 터를 잡고 수도나 화장실 시설 없이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건기와 우기의 계절변화가 있는 스리랑카에서 우기에는 비로인해 길이 사라져 다니기 힘들고, 건기에는 물이 없어 고통을 겪었다. 마을주민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우리는 가가호호방문을 했다. 작은 마을이었으나, 그 안에서도 가정의 형편은 천차만별이었다. 번듯한 집과 화장실 수도가 구비된 집이 있는가 하면 벽에 뚫려 바람이 숭숭 불어오는 가정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처음 만나는 북동아시아인이지만, 모두들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고, 자신들이 가진 음식을 나눠주었다. 머나먼 타국에서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인냥 찾아온 스리랑카에 우리를 맞이하는 소박하고 따뜻한 이 사람들을 만나면서 ‘경직’으로 만들어 놓은 장벽이 살며시 녹아내렸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려고 이장님을 따라 마을길을 내려오는데 우리 앞에 얇은 초록색의 뱀이 스멀스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아~~~~~악” 우리가 소리를 지르고 도망을 가는 사이 이장님은 막대기 하나를 들고 저벅저벅 걸어가서 초록색 뱀을 들어 저 멀리 던지신다. 이장님과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에게 손짓하며 부르셔서 다가가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신발도 신고 있으면서 뭐가 무섭다고 그래요?”

집으로 돌아왔다. “휴~~~”

얼핏 마당 쓰는 소리가 들린다. “아침 7시구나. 이렇게 아침이 왔네 아~ 일어나기 싫다” 그런데 오늘은 딱총소리와 함께 나뭇가지가 거칠게 흔들리는 소리도 들린다. 어기적어기적 밖으로 나가보면 아주머니가 미안한 얼굴로 나를 맞이하신다. “깼니?” 나는 늦잠 잔 것이 민망스러워 배시시 웃기만 한다. “원숭이가 망고나무에서 망고를 한입씩 베어 물어서 망고를 먹을 수 없게 되었어. 그래서 따따(아빠)가 원숭이를 혼내주고 있어.” 아주머니는 말씀 하시면서도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이런 나쁜 원숭이들…….”이렇게 원숭이를 욕하는 나에게 아주머니는 한 말씀을 더 하신다. “여기는 원래 밀림이었어. 지금이야 여기에 집들이 많이 생겼지만, 31년 전만해도 우리가 이곳에 들어온 2번째 집이었지. 우리가 동물들이 사는 곳을 빼앗았으니, 먹을 것이라도 나눠먹어야지.” 고개를 들어보니 정원에는 아저씨가 떨어진 망고를 줍고 계시고, 원숭이들은 여전히 나뭇가지를 오가며 놀고 있다.


왠지 마음이 부끄러워진다. 사람들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도시에서 줄 곳 살아온 나는 다른 동물들은 단순히 나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이라 여길 뿐 함께 공간을 나누어 살아간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회색빛이 아닌 자연의 색으로 가득 찬 이 곳에서의 앞으로의 생활이 궁금해진다. 과연 나는 이곳에서 다른 동물들과 공간을 나누며 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