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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농인태

27개월 인태의 봄맞이

날이 따뜻합니다.

어떤 날은 한낮 기온이 20도를 넘어가기도 합니다.

점점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고있습니다.

 

꼬농 인태랑 저는 밭도 갈아엎어야 하고, 작물에 물도주고, 거름도 줘야합니다.

 

 

 매일 봐서 그런지 인태가 괭이질을 시작했습니다. 요녀석 하우스 안에서 한참동안 괭이질을 하더니 상기된 얼굴로 하우스 밖으로 나옵니다. 좀 이상해서 모자를 벗겨보니 머리가 땀으로 흠뻑 젖었네요. "인태야 그만해~ 이제 쉬어." 아무리 말을 해도 괭이를 들고 연실 마당을 왔다갔다 하다가 다시 괭이질을 하다가 합니다. 한참 뒤 인태는 숨을 헉헉쉬며 제게 괭이를 넘겨줍니다.

 

 

"우리 뭐 먹을까?"

"빵~케잌~"

"아~~지금 그건 없어. 우리 그냥 계란먹자!! (순간 후회했습니다. 왜 물어봤을까? 달라는거 주지도 못할꺼면서...ㅠ,ㅠ)"

 

 춘미농장 유정란은 우리에게 맛있는 간식입니다. 인태는 한 번 앉으면 보통 2~3개씩 까서 먹습니다. 얼마 전 전주에 갔다가 사 온 땅콩도 까먹고요. 이제 까는 건 인태혼자 합니다. 작년부터 양파껍질을 그렇게 많이 까더니 마늘을 비롯해 손으로 까는 건 다 혼자서 하더군요.

 

 

오전에 밖에서 많이 일하면 집안에 들어와 충분히 쉬려고 합니다. 아직은...바깥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으니까요. ^^ 같이 책도 보고 블럭으로 놀기도 하고 소꼽놀이를 하거나 음악을 들으며 빈둥빈둥 누워있기도 합니다.

 

 

 그러다 또 시간이 지나면 다시 밖으로 나가고 싶어합니다. 한 번 나갔다 들어오면 흙범벅이 되니 빨래는 쌓여가고...아이코 힘들어 하다가도 ㅋㅋㅋ 건강하면 됐다!!! 하며 스스로 위로합니다. 인태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습니다. 관심있는게 생기면 다른사람들이 하는 걸 유심히 보다가 따라합니다. 물론 다른사람처럼 쉽게 되지 않으니 화를 내기도 하고요. 오늘은 혼자서 양말을 신겠다고 낑낑대네요. "엄마 도와주세요."라고 말할 때까지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말을 안하고 징징대면 "엄마도와줄까요?" 제가 먼저 물어보기도 합니다. "응" 하고 대답하면 다시 "엄마 도와주세요 하고 말해요." 가르쳐주고 인태가 제게 말할 떄까지 기다립니다. 오늘 인태는 한쪽 양말을 어설프게 신고나서 인태는 제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

 

 

어느날은 책장에서 제 전공서적을 꺼내더니 한장 한장 넘기며 그림이 나올 때 마다 물어봅니다.

 

"엄마 이게 뭐야?"

   "어 그건 DNA야"

 

"엄마 이게 뭐야?"

   "그건 혈관이야."

 

"엄마 이게 뭐야?"

  "그건 세포분열이야. 너도 그렇게 해서 태어난거야."

 

"엄마 이게 뭐야?"

  "아기야. 너도 이렇게 엄마 뱃속에 있었어."

 

문득 저도 책이 읽고싶어지더군요. 날도 따뜻하고... 다음날이 장날인데 비예보가 있어 그냥 생각난 김에 마을아래로 내려가 공공도서관에서 책도 빌리고 인태가 먹고싶어하는 빵도 사줘야 했습니다.

 

 

가벼운 모자를 씌워주려고 보니 벌써 작아졌네요.

어쩔 수 없이 제 모자를 최대한 줄여 씌워줬습니다. 아직은 이런걸로 뭐라 불평하지 않으니 다행인거죠.

면소재지까지는 우리 마을에서 편도 3~4km됩니다. 왕복 약 7km를 걸어야합니다. 뭐...오랫만에 걸어보렵니다.

 

 

인태는 오랫만에 집과 밭에서 벗어나 신나게 걸었습니다. 약 800m 걸은 뒤 다리가 아픈가봅니다.

"엄마 안아줘~"

"엄마 오늘은 너 안아줄 수 없어. 힘들면 유모차 타. 아니면 집으로 다시 가야해."

 

 

아무말 없이 인태는 다시 걷네요. 그러다가 정말 힘들었는지 고개를 숙이고 주저앉았다 다시 일어납니다.

"이거 탈래? 엄마가 쌩쌩 달려줄까?"

 

씨익 웃으며 유모차를 탄 인태는  아랫동네에 예쁜 골목길과 장계천을 감상하고 막 피려고 하는 꽃 한송이를 손에쥐고 잠들었습니다.

 

 

 

인태가 유모차에서 자는 동안 저는 공공도서관에서 책도 빌리고 처음 장수로 이사와 살았던 주인집에 들려 어르신와 안부인사를 나눴습니다. 어르신은 콩죽을 나눠주셨습니다. 저는 어리신께 요즘 고민인 고추모종키우는 걸 여쭸습니다. 어르신은 고추는 본잎까지 난 뒤 땅으로 옮겨심으셨다고 합니다. 하우스안이 후끈후끈 하더군요.

 

 

고맙게도 인태는 제가 볼일을 다 본 뒤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장계에 있는 아랑베이커리에 들어가 빵을 사먹기로 했습니다. 인태에게 직접 먹고싶은 걸 고르라고 했더니 초코머핀을 고르네요. 센스쟁이 사장님은 인태가 먹기 좋게 빵을 잘라주시고 물통에 빨대를 넣어 인태가 편하게 먹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게다가 저에게 따뜻한 메밀차도 주시고요. 감사하게도...

뭐처럼 우리 모자 기분내며 점심을 즐겼습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인태랑 저는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걷다가 만나는 어른들께 고개숙여 인사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아이고 꼬마 이쁘네? 어디살아?"

"저 윗동네 살아요. 갈평에 있는 하늘소 마을이요."

"저기까지 어떻게 걸어가려고?"

"그냥 천천히 가려고요."

"그려. 나는 여기살어. 내려오면 우리집에 와서 놀다가~"

 

어떤 어르신은 식범벅된 인태운동화를 보며 '저녀석 신발보게. 우리보다 더하네~' 하시기도 합니다.

요즘 매일매일 몇 번씩이나 "할비 보고싶어요. 할미 보고싶어요."해서 부모님께 당장 갈 수 없는 우리 상황이 속상하기도 하고, 우리때문에 할머니 할아버지와 멀리 떨어진 인태를 보며 마음이 짠~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이렇게 길에서 만나는 어르신들과 인사 나누고 예쁨받아며 만족하는 인태를 보니 이제 힘들어도 가끔 이렇게 걸어서 내려와야겠구나~ 싶습니다.

 

 

길을 걸으며 인태는 가끔 물통을 꺼내 물을 마시고, 길가에 있는 돌 갖고 놀았습니다. 자기 옆에 꼭 붙어있는 그림자를 밟으려 뛰어갔다가 뒤로 물러섰다가를 반복하기도 하고요. 길을 걸으며 느끼는 바람도 상쾌하네요. 오늘 인태도 대략 3km는 걸었습니다. 그래도 쌩쌩하게 집에 돌아와 밭에 물을주네요.

 

 

놀땐 놀더라도 할일은 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