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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머컬쳐디자인/들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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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지 그리워도 뒤돌아보지 말자 작업장 언덕길에 핀 꽃다지⋯⋯. 퀭한 눈 올려다 본 흐린 천장에 흔들려 다시 피는 언덕길 꽃다지눈 감아도 보이는 수많은 얼굴 작업장 언덕길에 핀 꽃다지⋯⋯. 흐린 천장에 흔들려 다시 피는 언덕길 꽃다지 노래패 〈꽃다지〉가 부른 '꽃다지' 가사다. 꽃다지 노래패가 나오기 전까지는 꽃다지라는 잡초가 있는 줄 몰랐다. 왜 그들은 노래패에 하필이면 꽃다지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아마 너무나 흔해서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 못하는 잡초를 민중의 삶에 비유한 것이리라.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듬해가 되어야 나는 어떤 것이 꽃다지인지를 알게 되었다. 3월, 농사 준비를 하느라 밭을 수없이 오가면서도 밭 가장자리 양지에 조그마한 잎을 땅바닥에 바짝 붙인 채 피어난 꽃다지를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봄 ..
"피죽도 못먹었어?" 돌피, 피 피죽 한 그릇에 허리 졸라매고 초근목피로 허기진 배 채우던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사흘에 피죽 한 그릇도 못 얻어먹은 듯하다'는 속담도 있듯이.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끼니를 잇기가 어려웠다. 전쟁은 농사를 짓던 사람을 죽게 했고 땅은 초토화되었다. 비축해 둔 식량은 동강이 났다. 전쟁이 끝나면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는 일이 많이 발생한다. 내 아버지의 아버지도 그렇게 돌아가셨다. 전쟁은 또 생태계를 파괴한다. 그래서 전쟁의 후유증은 상당기간 지속된다. 땅이 회복되어 곡식이 자라 수확하려면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전후의 사람들은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풀을 뜯기도 하고, 척박한 땅에서 나오는 잡초를 뜯어서 끼니를 이어간다. 며칠을 굶주리면 평소..